네이버에서 영화란에 "밀양" 영화의 네티즌 감상평을 보니까...
건실한 기독교신자인 분 같은데...이 영화에 대해 잘분석한것 같아
올려봅니다..진실한 종교,신앙,구원에 대해 찾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있는지 그 생각을 엿볼수 있는 글같아 보입니
다...영화감독을 지망하는 네티즌이라고 자기소개 했는데...
이글로 보아서는 상당히 영화평론도 잘 쓰는편 같아 보입니다.
감상평이 좀 길지만,원작소설의 요약본이나 시나리오 읽는다고
생각하시고 한번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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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즘 세간의 화제 영화, ‘밀양’을 보고
요즘 볼만한 생각할만한 한국영화가 드물어 목말라하던 참에 내가 좋아하는 싸이코 영화감독군에 속하는 이창동이란 사람의 영화, 밀양을 선택하고 매우 뛰는 가슴을 갖고 영화관으로 향했었다.
역시 기대했던 바대로 그의 영화는 오아시스나 박하사탕처럼 두 번이상은 꼭 보고 분석을 해봐야 왜 이런 사이코틱한 영화를 계속 만들어내는지 알 수 있는 그런 영화다.
그리고 항상 내게 그리고 힘든 삶의 전선에서 하루 하루 삶을 연장해가는 현대인들에게 한번쯤은 자기 삶을 돌아볼 기회를 여전히 선사한다.
또한 이런 부류의 감독들의 영화는 내가 내눈으로 내가 느끼며 살아가는 인생(삶의 스테이지) 그리고 주변사람이라고 하는 움직이는 사물(?!)에 대한 나의 시각과 이해의 어떠함이 영화감독이라고 하는
그래도 대중적으로 걸러진 시각을 가지고 대중에게 들이미는 ‘인생과 인간을 보는 시각’에 대해 항상 궁금한 것도 이런 부류의 영화를 보는 이유이다.
그리고 내 시야 그리고 그들의 사야를 비교하고 또 내 삶의 수준을 다듬고 손질하고 어쩌면 땡볓처럼 무미건조한 공포스럽게(?!) 연속되는 일상속에서 다시 내가 생각하는 삶을 여전히 살아간다.
영화 중간 중간에 주인공의 불행속 처절함과 절규에 가슴이 미여져 한동안 심장을 부여잡고 나도 살아서 이 영화관을 걸어 나가야지 하면서 참았던 순간이 몇번 있을 정도로,
전도연의 절규는 처절했고, 송강호의 코메디는 불행없는, 인생의미를 포기하고 적응하고 사는 현대인들 처럼 깊은 삶의 무미건조함에 숨이 턱턱 막혀왔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가족 모두를 잃고 방황하는 한 인간(전도연)이 결국 다른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신에게까지도 위안을 얻지 못하고 일상속 혼자로 돌아간다는 어찌보면 우리 일상 그 자체이다.
극중에서 전도연은 한마디로 과부다. 바람피던 남편과 사별한 전도연은 외아들과 함께 밀양으로 이사를 온다. 처음 접한 밀양 주민은 송강호.
그는 39세 노총각으로 영화시작부터 영화 끝까지 돈벌이도 팽개치고 전도연을 사랑하고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도와준다. 가진건 건강, 외아들, (내 개인적 판단에)5억정도의 돈 그리고 피아노학원을 차릴만한 피아노기술.
그녀는 바람폈던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그래도 남편과의 유대를 잊지 못해 외아들과 내려와 살게된 것이다.
그녀는 밀양에 내려와 살며 주변에 그래도 기죽지 않으려고 오자마자 피아노학원을 차리고 주변에 땅을 사려고 매물을 찾고 다니다 송강호가 소개해 주는 주변의 지인들 그리고 동네유지들과 접촉하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과거의 슬픔들을 잊고 살기 사작한다.
그러나 그녀의 운명은 그녀를 그렇게 살게 허락하지 않았다. 아들과 또 사별하게 되면서 그녀가 억누르고 있던 지난 과거의 고통과 불평이 폭발하게 된다.
꽝~~~! 그런 그녀를 붙잡아준건 송강호의 이성적 사랑(구체적 러브어페이는 없음. 그냥 송강호의 끈질기고 풋풋한 짝사랑), 잠시이지만 그녀가 밀양에서 처음 접하게된 기독교라는 종교, 그리고 멀리서 가끔 찾아와주는 혈육 남동생,
그리고 그녀 주변에 한국인의 전형(prototype)을 보여주는 이웃주민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결국 그녀를 위로하거나 그녀의 삶을 잡아주지 못하고 그녀는 자살을 결심, 결국 회생하지만 막상 닥친건 햇볓 쨍쨍 내리쬐는 한낯의 땡볓이라고 하는 지루한 일상....... 그리고 영화는 기승전결도 없이 앤딩자막이 올라간다.
관객을 한참 올려놓고 질문을 던져놓고 뭔가 답을 찾아줄것 같더만 공중에 올려놓고 내리디딜 발판도 안주고 횡하니 앤딩자막을 올려버린다.
황당하다......하지만 뭔가 깊이 내 맘속에 상처를 남긴다..... 괴롭다...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내 모든 아픔들을 갈기갈기 다 찢어놓고는 영화는 도망쳐버린다
....... 마치 인생이 내게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해답은 역시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 더러운 땅에서 착지점은 니가 찾아임마! 하고 영화는 횡하니 나를 다시 일상으로 쳐 넣는다....나쁜놈......
밀양의 의미는 원래 비밀밀 그리고 볓양...이라고 해서 비밀스런 햇빛, 그리서 영화의 영어명은 Secret Sunshine이다.
영화는 신기하게도 거의 모든 화면에 90%이상을 할애하며 전도연만을 끈질기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영화가 주인공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이나, 이영화는 특히 이런 특이한 기법을 고집부렸다.
그것은 끈질기게도 인간의 현실이란 내가 내 눈으로 내가 혼자 바라보는 세상이 어찌보면 대부분일 수 밖에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인생의 세팅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서일 것이다.
영화속 주인공 전도연을 맴돌던 그녀의 삶에 엃힌 대부분의 인물들에 대해 하나 하나 짚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왜 어떻게 그녀의 불행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1. 전도연 아버지(영화에는 안나옴, 언급도 없음) - 혈육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딸이라고 대학교육을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키워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아노학원을 차릴만한 기술은 가지고 있었으나, 변변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주지 못한 무능한 아빠, 그래서 주인공에게 상처로 남은 우리시대 우리나라의 아버지들 중 한사람
2. 죽은 남편 - 부부(남여 로맨스의 결실)
죽기전 바람을 폈고 교통사고로 죽었다고만 나온다. 말할 필요없이 가정에 충실하거나 부부순결을 지킬 의사가 없는 오늘날 흔히 보는 남편 또는 아내.
몇억정도의 보상금을 가족에게 남길 수 있었던 어찌보면 오늘날 평범한 가장. 하지만 그녀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 장본인.
3. 밀양에 내려가 살다가 죽은 외아들 - 자식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했던가. 하지만 힘든 그녀의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준 아들. 가족이라고 하는 전통 이데올로기를 그래도 붙잡고 거기 의지해보려고 했던 주인공 전도연.
그리고 그 미디어 역할을 했던 아들은 끝내 주검으로 동네 연못에 둥둥 떠있다. 그녀를 과거의 모든 슬픈 기억을을 폭발하게 만든 미쳐 날뛰게 한 장본인.
하지만 이 시대의 가장 연약한 계층(어린아이와 과부)중 한명으로 어찌보면 연못에 퉁퉁불어 죽어 떠있는 모습을 보며 전도연 자신의 처지를 오버렙시켜 절규하게 만듦.
세상에 주는 매서운 공격에 순순히 당하고 죽어갈 수 밖에 없는 힘없는 존재.......... 죽은 아들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깨달으며 주인공 역시 맘속으로 서서히 죽어간다....
보는 관객도 분노와 억울함이 내일같아.....가슴이 터지고 찢어짐..심장이 멎을것 같음...........
4. 송강호 - 일방적이지만 남여의 로맨스 수준의 순수한 사랑을 주는 노총각
순수하고 선량하며 전도연을 본 순간부터 끝가지 그녀의 사랑을 쟁취하려 동서분주한다. 하지만 결국 송강호는 선천적으로 그녀의 스타일이 아니어 그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끝가지 그녀에게 일방적인 호의를 배푸는데 끝난다.
결국 인간적 남여간의 사랑도 타입(저급용어로 식성)에 따라 받고 줄 수 있는 이기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는 것. 결국 전도연을 위로하지 못하며 일방적인 사랑으로 현재진행형으로 영화 끝장면을 장식한다.
5. 기독교에 귀의하게 한 전도연 피아노학원 앞 약국 부부 - 종교 전도자
힘든 그녀를 보고 종교에 귀의하도록 권유해 그녀가 교회에 나가게 한다.
자신의 방식대로 남의 고통을 전혀 가슴이 담을 줄 모르는 교인 그리고 결국 그녀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해범을 용서하지 못하고 교회생활을 포기하자 전혀 그녀의 곁에서 도움을 줄 수 없었던 오늘날 현실적 무능종교의 표상을 보여줌.
거기다 약국부부중 남편은 종교를 포기하고 미쳐날뛰는 전도연과 밀밭에서 섹스까지 하고 만다...... 전도연은 섹스도중 하늘에 대고 전능자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보고있냐? 보고 있냐고!
6. 밀양 이웃주민(대부분 40-50대 아주머니들 그리고 전도연과 전혀 접촉이 없던 송강호의 지역친구들) - 이웃
한국 이웃의 전형이다. 앞에서는 알랑방구. 뒤에선 뒷담화, 남 흠집내기.
미용실에서 벌어진 전도연 뒤에서 하는 전도연에 대한 아줌마들끼리의 뒷담화는 섬뜩한 한국의 깊은 뿌리, 왕따신드롬의 전형을 보여준다.
결국 한국에서 이웃이란 내가 맞춰야지 나에게 다가와 나에게 맞춰주고 내게 진정한 위안이 될 수 없는 2살짜리 어린아이와 같은 것. 이웃사촌이란 말은 옛말인 듯 싶다.... 섬뜩한 한국의 전형적인 이웃관계다.
7. 그녀가 밀양에서 전도받아 귀의한 기독교 속 하나님 - 전능자
그녀가 귀의한 종교속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목소리를 듣거나 구체적 경험을 하기 보다는 말씀 속에서 자식잃은 것에 대한 큰 위안과 과거인생 전반에 대한 정리 그리고 다시금 그녀 얼굴에 웃음을 되찾게 해준다.
믿음의 꽃, 원수에 대한 용서를 하겠다는 결심으로 전도연은 아들을 죽인 살해범이 있는 교도소로 향한 전도연. 하지만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처럼, 고통속에 머물줄만 알았던 살해범이 환한 인상으로 그녀를 맞이한다.
자기도 종교에 귀의해 신께서 자기를 이미 용서하셨고 자기도 이미 편하다고 하는 말에, 그녀는 한마디도 못하고 교도소 밖에서 기절하고 만다.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신이 자신의 유일한 희망인 외아들을 무참히 죽여 연못에 던져버린 살해범을 용서해줄 겨를도 없이, 신은 먼저 그 원수를 용서했다는 말에 신에게 저주를 퍼붓기 시작한다.
그녀에게서 자신의 원수를 용서할 권리조차 빼앗아간 전능자.....그녀는 모처럼의 평화와 안정을 모두 팽개친체 본격적으로 망가지기 시작한다. 영화끝까지 그녀는 신이 싫어하는 짓만 골라서한다.
8. 그녀의 혈연 가족(영화에서는 두 번 며칠 방문한 남동생만 나옴) - 혈육
영화에서 가족은 주인공 가족뿐만 아니라 송강호의 가족 등 대부분의 가족은 사회보편성에 기반을 둔 잣대로 끝없이 개인과 개인을 옥죄는 올무로서 다가온다.
노총각 송강호의 가족은 전화대화로만 나오지만 끝없이 송강호를 옥죄온다. 왜 장가안가고 그지랄하고 사느냐며 끝없이 무시하고 채찍질하고 결국 위안을 주지 못하는 한국의 가족. 전도연의 가족 남동생은 두 번 전도연을 방문한다.
아들이 죽기 전, 불쑥 찾아와 바람핀 남편이 살던 고향에 왜 내려와 사느냐며 결국 전도연의 혈연가족이 이해할 수 없다며 하루만에 획 돌아가버리는 무정한 혈연가족.
두 번째 방문은 그녀가 자살시도후 회복기에 한나절 잠시 방문한다. 그리고 기차타고 횡하니 가버린다. 그녀의 고통, 처절함, 자살할 수 밖에 없전 전후상황에 혈연가족은 아무일도 아무도움도 주지 못한다. 결국 내가 맞춰야 할 주변 이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숙제일 뿐이다.
9. 공권력(영화에서는 경찰) - 치안시스템
아들이 죽었을 때 몇 번 경찰들이 나온다. 결국 해줄 수 있는 건 아들시체를 찾아 그녀에게 보여주고 괴롭히는 것, 그리고 살인범을 잡아 자신들의 업무건수를 채우는 것, 그거 이상도 이하도 없는 무능한 오늘날의 치안시스템......
10, 교회 목사님 이하 성도들 - 교회성도들
그녀를 무지하게 도와주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그들만의 문화속에서만 행한다. 자살로 가기까지 그녀는 줄곧 혼자다.
집에 한번 찾아와주는 교회성도들은 한사람도 없다. 그들만의 가족모임에서 자기들끼리 모여서 입발림으로 하는 중보기도(남을 위해 하는 축복기도) 그게 전부다. 오늘날 기독교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웃의 아픔, 고통, 시대의 아픔 등을 전혀 서비스할 줄 모르는 형식에 치우친 오늘날의 기독교. 결국 이 영화속에서 처절하게 찌들어가고 말라가는 주인공 과부에게 교회 교인 어느 누구도 맘속으로 다가가 그녀에게 위로를 주지 못하고 형식에 치우쳐 교회모임만 갖고 살아간다.
11. 학교선생님(아들이 어려서 여기서는 취학전 학원선생님) - 선생님
주인공의 아들을 죽인 살해범은 결국 선생님이었다. 선생은 과거에 인생의 빛이었다.
앞날을 밝혀줄 사람됨의 본보기였다. 하지만 무능력, 이데올로기에 찌든 오늘날 무능한 선생님의 표상을 지나치다시피 묘사해준다.
12. 돈.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은 끝까지 그녀에게 남아있다. 몇 억의 돈이 그녀의 수중에 있다. 그러나 전혀 그녀의 인생과 불행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결국 그녀의 외아들을 죽게 한 것은 유괴범이었고, 그 유괴범은 지방에 오자마자 학원을 차리고 땅투자를 위해 부동산을 찾아다니던 그녀의 행적을 보고 돈을 노리게 되고 결국 아들은 주검으로 그녀 앞에 나타나게 된다.
결국 그녀에게 있어서 돈은 긍정적으로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악세사리, 부정적으로는 아들을 죽인 근본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13. 주인공 자신(아니 어쩌면 우리 인생들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은 신처럼 깨끗하고 오류와 잘못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고 산다. 위 모든 사람들과의 안 좋은 결과를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린다.
결국 먹고 살려고 늦게까지 술마시고 동서분주하다가, 애는 밤늦까지 뒷전으로 미뤄 집에서 혼자 자도록 내버려두지만 않았어도 애는 유괴되지 않았을 것을..... 머 이런 부분등을 포함해 그녀 역시 자신의 불행을 자초한 부분부분의 잘못들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철저하게 자신의 오류와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의 속성일까? 스스로 존재의 불완전함을 용서하려고 하지 않는 주인공. 오늘날 모든 현대인의 표상이 아닐 수 없다.
식구도, 종교도, 이웃도, 남편도, 자식도...결국 내게 도움이 안된다는 식의 이기주의는........스스로의 불행에 휘발유를 끼얹는 꼴밖에 더 되지 못했다.
영화는 줄곧 주인공이 어이없이 당하는 쪽으로 묘사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는 서두에도 말했다 시피 워낙 카메라 앵글 자체가 주인공 일인이 보는 세상을 대부분 보여주다 보니 그런 착각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이 처절하게 망가져가는 여인 역시, 자신은 떳떳하게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라고 하는 극단적 이기주의를 가진 나약한 현대인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교회성도와의 무차별 섹스 , 자살 등으로 허공에 삿대질 하는 정도... 구원이 없음이 스스로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스스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그래서 또 다른 죄와 포악성과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밖에 그런 대안밖에 생각해 내지 못하는 오늘날의 인간상........
결국 주인공 아들을 죽여 주인공을 미치게 한 학원선생도 그의 이전 삶에서 이런 인간궁상속에 고통속에서 세상을 포기하고 살았을 것이 분명한데...
결국 스스로 완벽하게 착한줄만 알았던 주인공도 이런 쓰레기같은 세상에서 결국 쓰레기짓 밖에 하지 못한다...... 영화 마지막 전장면에 전도연은 머리를 다듬으러 미용실에 갔다가 미용사가 살인자 딸인 것을 보고 분노하며 집으로 돌아와 뒤뜰에서 거울을 세워놓고 머리를 스스로 자르기 시작한다. 그것도 힘들어서 송강호가 찾아와 거울까지 들어받쳐준다.
스스로 자기머리조차 온전히 자를 수 없는 그것이 사람...... 그래서 사람은 미용원, 이발소에 다닌다.... 하지만 내가 못하는 것을 대신 해줄 또 다른 나 아닌 인간, 미용사.
하지만 미용사는 자신 아들을 죽인 살인마의 딸........휴..... 혼자살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 하지만 끝없이 내게 고통을 주는 타인들.......이것 역시 인간세상의 큰 딜레미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이창동은 잔인하고 또 예리하다......
이렇듯, 그녀 주변에 있는 이런 수많은 관계와 조건들은 어찌보면 평범할 수 있다. 남편도 자식도 사별할 수 있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살며 부딛히며 희노애락할 수 있는 평범한 조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라고 하는 것이 현대인들에게 만만치만은 않게 다가온다. 결국 이 글을 읽어가는 내가 이 영화속 주인공과 같이 되었을때,
전도연과 다른 반응을 좀 더 성숙된 덜 가슴아픈 반응을 보이며 살아갈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 영화는 과연 인간에게 있어 구원이란 있는가........를 묻는다. 이런 피는 안보이지만 끝없이 피튀기는 생존의 현장에서....인간에게 구원이란 있는가.......휴~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해 온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혹자는 지루하다고 하나 나는 가슴을 조리면서 한편의 스포츠를 보는 듯 했다. 과연 이 영화는 인간을 구원시킬 수 있는 뭔가 대안의 가능성을 말해주나 싶구나......
결국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살해범의 외동딸을 용서하는 주인공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와 뒤뜰에서 스스로 머리를 다듬는 전도연의 일상적 모습을 보이며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다..
결국은 불행을 당한 인간 스스로는 세상을 저주하고 세상에서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과 동일하게 망가져만 간다. 하지만 그 옆에 여전히 비춰지는 한줄기 햇살........ .
영화 제일 마지막 장면은 잔잔히 흙탕물에 비친 햇볓 한줄기, 영화의 시작도 쨍쨍 내리쬐는 밀양의 햇볓...그리고 영화 중간 중간에 비쳐지는 일상의 햇볓......
그리고 그녀를 전도했던 앞집 약국 아줌마의 대사........ 하나님은 선한사람이나 악한사람이나 모두에게 동일하게 햇빛을 선사하신다는 대사.......
이 영화의 제목은 밀양(비밀스런 햇빛)이다. 자칫 제목을 생각지 않고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본다면 전혀 내용과 걸맞지 않는 영화제목이다.
하지만 결국 아무리 주인공이 불행속에 발버둥을 쳐도 마치 거들떠 보지도 않는 듯 느껴지는 신이라고 하는 절대자, 그리고 그가 변함없이 내려보내주는 햇빛.........
그리고 인간사의 변하무쌍함 그리고 변함없는 신의 인간에게 주는 서비스의 상징, 햇빛이라고 하는 엄청나게 큰 괴리감을.....이창동 감독은 영화시작부터 끝까지 조명하고 있었음을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깨닫게 된다.
그래 그래서 뭐 어쩌라고...... 진정한 구원이 없는 이 시궁창같은 인간만사에서 내가 뭐 어쩌라는거야.......아무리 발버둥쳐보고 하늘에 대고 욕도하고 신이 싫어할 짓만 골라해본들......여전히 햇빛은 그 광인의 머리위를 비쳐준다.....
영화 속에서 아니 여러분의 인생속에서 이런 동일한 세팅속에서 여러분만의 구원의 길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전도연처럼 이 더러운 세상에 하나의 악을 더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망가뜨리기 보단 할 수 있는 한 선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구원의 길을 열심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다가가지 못하고 형식속에 자신들의 삶 유지만을 위해 종교에 귀의하고 또 종교생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히 생각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시궁창 같은 인간세상 속 어디에서 구원의 길을 다시금 찾아보시렵니까?
결국 이창동의 영화는 우리에게 숙제만 남겨준 꼴이 되었다........
*오랜만에 강추 강추하는 좋은 영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