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불교, 유교, 선(도교, 기독교)을 받아들이기 훨씬 전부터 신교를 믿어 왔습니다.
우리 민족이 오래 전부터 믿어 온 신교와 상제문화를 증산도에서 올바르게 되살렸습니다.
증산도를 통해서 우리민족의 역사와 혼을 바르게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증산도는 한민족의 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암울했던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왜곡된 역사를 지금까지 별다른 수정없이 그대로 배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정하기 싫지만 분명한 현실입니다.
그나마 만신창이로 엉망이 된 역사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구상에 역사를 안가르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역사를 모르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성姓을 안가르쳐 주는 것과 같습니다.
국가가 몸이라면 역사는 정신입니다. 국가가 망하면 다시 일으켜세우는 예가 얼마든지 있지만 역사를 잃어버리면 그 나라는 끝장이 난 것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국민이 자기나라 역사를 왜곡되게 알거나 모르게되면, 국가관이 삐뚤어지고 가치관이 파괴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왜곡된 역사를 올바르게 세우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증산도는 올바른 우리 역사의 혼과 정신문화를 온전히 담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증산도를 알게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증산도는 역사적으로 봐도 1920년대인 암울했던 일제시대에 증산상제님을 신앙했던 우리선조들은 상제님 신앙이 600만명을 훨씬 넘는 보편화된 신앙문화였습니다.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자금지원과 물산장려운동 등으로 상제님신앙은 민족의 등불역할을 하다가 일제의 집요한 탄압으로 결국 그 뿌리마저 뽑힌 것을 이제야 증산도가 바로 잡은 것입니다.
또한 증산도는 우리 민족이 오래 전부터 신앙해 왔던 삼신님과 칠성님이란 이름으로 민간에서 모셔왔던 상제님 문화의 뿌리를 밝히고 있습니다. 역사는 정신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써 우리의 역사를 모른다는 것은 어불성설 아니겠어요. 증산도를 통해서 진정한 대한국인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아래에 증산도에서 발행하는 월간개벽(1.우리 민족사의 뿌리, 2.안경전 종정님말씀)을 통하여 더 자세한 내용을 밝혀드립니다.
1. 우리 민족사의 뿌리
민족사의 국통, 이렇게 흘러왔다!
역사를 알아야 나라의 정신이 바로 선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국사(國史) 현주소는 어떠한가? 무엇보다 가장 우선해야 할 역사교육이 지금은 겨우 그 명맥만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고등학교에서 국사는 선택과목이 되었고, 그나마 국사책에 실린 내용도 사대주의 역사기록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일제 식민사학에 의해 왜곡조작된 내용을 아직도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잘못된 역사교육에 의해 우리 자신을 스스로 선천적으로 미개하고 무능한 민족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국사가 개인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세계화시대에 걸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사해체론’ 까지 등장했다. 중국이나 일본은 없는 역사를 조작해서라도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는데, 우리는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기는커녕 그나마 있는 역사마저 해체하자고 주장하고 나서니, 참으로 어이가 없고 기가막힐 노릇이다.
도대체 우리 역사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원시반본(原始返本)의 가을개벽을 목전에 두고, 과연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그 장대한 역사가 어떻게 흘러내려왔는지, 우리 역사의 진실된 뿌리와 맥을 짚어보기로 하자.
우리 역사의 시작은 어디서 부터?
학계에서 역사를 분류할 때, 크게 문헌으로 기록된 시대는 역사시대로, 그 이전은 선사(先史)시대로 구분한다. 그리고 고고학적으로는 도구의 재료에 따라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분류한다.
여기서 명백히 선사시대라고 할 수 있는 구석기(약 60만년 전)시대는 생략하기로 하고,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인류생활상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때인 신석기혁명(약 1만년 전) 이후로부터의 역사를 살펴보자.
현행 국사교과서는, 만주나 한반도에서 구석기는 물론 신석기, 청동기, 철기문화의 흔적들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 관한 문헌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선사시대로 분류해왔다.
또한 우리 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를 고조선으로 짤막하게 다룰 뿐, 고조선 역사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단군 이야기’ 운운하며 애매모호한 기술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단군시대 이전의 배달국 시대에 대해서는 극히 짤막하고 피상적으로 언급만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배달 환웅시대 이전의 환국시대는 아예 기술하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고구려(BC 58~AD 668), 백제(BC 18~AD 660), 신라(BC 42~AD 668)로 시작되는 삼국시대부터 구체적인 역사기록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을 개국한 것이 BC 2333년인데, 그로부터 삼국시대 전까지의 중간역사는 통째로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리고 2002년 6월 한일월드컵 때 한반도를 구비친 붉은악마 깃발 속의 치우천황은 도대체 어느 시대 인물일까? 그 당시의 역사기록은 정말 없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국사 교과서에는 아예 빠져 있거나 피상적으로 언급된, 우리 민족의 뿌리 역사 즉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삼성조 시대에 대한 기록이 번연히 전해 내려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이 쓴 『단기고사』(檀奇古史, 792년 지음), 북애노인이 쓴 『규원사화』(揆園史話, 1675년 지음), 그리고 계연수가 엮은 『환단고기』(桓檀古記, 1911년)에 수록된 「삼성기」, 「단군세기」 등이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사관에 물든 강단사학계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기록들을 위서(僞書) 운운하며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물론 『환단고기』 등의 일부 기록에 근대문화 이후의 술어가 등장하는 등 문제가 있다고는 하나, 그들 기록이 전하고 있는 고대사의 기본틀 전체를 부정하고, 기록 일체를 아예 위서로 몰아부치는 것은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신교문화의 역사관을 담고 있는 우리 민족의 고유의 전통 도가사서 - 삼성기, 단군세기, 단기고사, 규원사화 등 - 의 역사기록을 통해, 우리 민족의 시원사(始原史)와 국통(國統)을 정리해 본다.
우리의 뿌리역사, 환국시대와 배달환웅시대
한국의 역사는 상대(上代), 고대, 중세 또는 중고(中古), 근대, 현대로 크게 구분된다. 상대는 다시 삼성조시대(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와 열국시대(북부여, 삼한, 낙랑, 옥저 등)로 구분되고, 고대는 다시 사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와 남북조(발해, 신라)시대로 구분된다. 고려·조선시대는 중세에 해당되며, 구한말과 일제강점기가 근대, 8.15해방 이후로 지금까지는 현대에 속한다.
이중 우리 역사의 뿌리에 해당하는 삼성조시대를 알아보자.
『환단고기』 「삼성기」 하편에 의하면 “옛날에 환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남북이 5만리, 동서가 2만리 되는 대제국으로서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나라를 이루고 있었고,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우루국, 수밀이국, 구다천국, 구모액국, 사납아국, 객현한국, 매구여국, 구막한국, 일군국 등 12환국으로 되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환국의 통치자를 환인(桓仁)이라 불렀으며, 초대 환인인 안파견 환인으로부터 7대 지위리 환인까지 7명의 환인이 있어, 그 역년이 BC 7199~BC 3898년까지 총 3301년간 지속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 정덕본의 「고조선기」에도 엄연히 ‘옛적에 환국(桓L)’이 있었다고 명기(明記)해 놓았다. 이것을 총독부의 관변학자 이마니시 류가 환인(桓因)으로 슬쩍 고쳐놓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지금의 대학강단에서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국 기록을 비웃으면서, 그 시대를 어떻게 민족의 고대사 시대로 인정할 수 있겠느냐는 잡다한 학술논리를 앞세워, 연구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같은 학술적 시대구분은 실증주의 사관에 편향된 오늘날의 학자들이 창조해낸 관념이요 주관적 기준일 뿐이다.
이와는 별도로 우리 역사는 그 자체의 생성기원을 갖고 있으며 고인들은 당대의 기준으로 국가라 부르고 그것을 사서에 기록했을 뿐, 없는 사실을 임의로 지어낸 것이 아니다. 따라서 환국은 민족의 시원사 연구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다. 북미 인디언이 근대적 시대구분으로 국가를 세운 적이 없다고 해서 인디언 역사가 없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엄연한 오류가 아닌가.
도가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환국 말기에 이르러 마지막 환인인 7대 지위리 환인께서 환국의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을 주고 풍백(風伯)과 우사(雨師), 운사(雲師)와 제세핵랑군 3천명을 주어 동방으로 보냈다.
이에 환웅은 태백산(백두산) 아래(천평)에서 세계 최초의 도시 국가인 신시(神市)를 건설하고 나라를 세우니 이로부터 배달국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백두산의 박달나무 아래에서 제단을 만들고 천제를 올렸다. 배달국시대는 초대 거발환 환웅으로부터 18대 거불단 환웅까지, BC 3898~BC 2333년까지 1565년 동안 지속되었다.
흔히 우리 민족을 ‘배달민족’, ‘배달겨레’ 라 부르는데, 이 배달의 유래가 여기에서 비롯 되었다.

이 배달환웅시대가 후기 신석기시대에 해당되는데, 사회신분과 경제상의 계층분화가 이루어지면서 실질적인 국가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 배달국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문화영웅들이 출세하여 인류문명의 새장을 연다. 그 시작이 바로 팔괘를 그려 역학의 기초를 세운 태호 복희 씨(배달국의 5세 태우의 환웅천황의 12번째 아들 )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농사짓는 법을 최초로 가르치고, 수많은 약초의 약성을 구분하여 의학의 기초를 세운 신농씨도 8대 안부연 환웅시대의 인물이며, 월드컵 붉은악마 깃발의 주인공인 치우천황은 바로 14대 자오지 환웅천황이시다.
이처럼 배달환웅시대 우리 선조들의 업적들이 오늘날 우리 문화를 형성한 바탕이 되어 지금까지도 면면히 전해내려 오고 있는데, 그 역사를 어찌 신화로 치부해 버릴 수 있겠는가.
따라서 짧게 잡아도 우리 민족의 역사는 배달환웅시대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실질적인 개천절 또한 단군의 조선개국일이 아니라 환웅천황의 신시개천이 진정한 개천절인 것이다.
47세를 이어온 단군 조선시대
배달국시대가 1565년간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환웅천황은 그 지역의 원주민인 곰을 토템으로 하는 곰종족과는 융화하고 통혼을 하였고, 범을 토템으로 하는 범종족은 무력으로 정복하기도 했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는 사실 곰족과 호족을 지칭한 것이다.
배달국의 마지막 18대 거불단(居弗檀) 환웅천황이 웅씨의 왕녀와 결혼하여 신묘(辛卯)년 5월 2일 인시(寅時)에 아들을 출산하니, 그가 바로 단군조선을 개국한 초대 단군왕검이시다.
단군왕검은 14살 때, 웅씨국의 비왕(裨王, 임금을 보좌하는 으뜸가는 벼슬)으로 봉해졌다가 38세 때, 구환국을 다시 통일하여 도읍을 송화강 부근의 아사달(하얼빈)에 세우고 나라를 세웠다. 개천 1565년(BC 2333년) 10월 3일, 초대 단군왕검은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나라이름을 ‘조선’이라 했다. 이때 중국에서는 요임금이 즉위를 하였는데, 초대 단군왕검과 동시대를 이룬다.
단군왕검(檀君王儉, 본래는 단군임검檀君壬儉인데 ‘임금’을 이두식으로 ‘왕검’이라 표기한 것이다)에서 ‘단군’은 소도제천을 주관하던 제사장으로 천군(天君)이라고도 하며, ‘왕검’은 통치자(임금)를 뜻한다. 따라서 ‘단군왕검’은 제정일치사회의 최고통치자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강화도 마리산에 가면 참성단(塹城壇)이 있는데, 그것이 초대 단군왕검이 88세 되던 해에 마리산에 제천단을 쌓고, 91세에 친히 하늘에 계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던 곳이다.
그리고 초대 단군왕검 재위 시, 중국에서 큰 홍수가 일어났다. 이에 단군왕검은 네 아들 중 맏아들인 부루태자를 우(禹)에게 보내어 선진문물인 ‘오행치수법’을 전수시킴으로써 중국의 9년 홍수를 다스리게 했다.

이 단군조선(고조선)은 BC 2333년 ~ BC 238년까지 2096년 동안 47대의 왕위가 이어졌다. 고고학에서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청동기 문화의 시작을 BC 2400년경으로 보고 있는데, 이 시기가 바로 고조선 왕국의 건국시점인 것이다.
단군왕검은 전국을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통치했다. 아사달(하얼빈)을 수도로 한 진한(辰韓)은 단군왕검이 직접 통치했고, 당산시를 중심으로 한 번한(番韓)과 평양을 중심으로 한 마한(馬韓)은 부단군을 두어 통치하게 했다. 이러한 통치제도를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라 하는데 이는 애국지사 단재 신채호 선생이 밝힌 바 있다.
단군조선시대는 3단계로 구분한다. 초대 단군왕검부터 21세 소태단군까지(BC 2333~BC 1286) 1048년간을 ‘송화강 아사달 시대’라 부른다. 이후 22세 색불루단군부터 43세 물리단군까지(BC 1285~BC 426) 860년간을 ‘백악산 아사달시대’, 44세 구물단군부터 47세 고열가단군까지(BC 425~BC 238)를 ‘장당경 아사달시대’라 한다.
이렇게 47대를 이어온 단군조선이 말기에 이르러 통치기능을 상실하면서 고조선의 많은 제후국들이 각기 독립된 정치세력을 이루기 시작했다. 중국도 이때 봉건제국가인 서주(西周)가 통치력을 잃어가면서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었는데, 한국사와 유사한 시대상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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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여를 비롯한 열국시대
고조선 말기 여러 제후국들이 독립 세력으로 등장했던 이 시대를 ‘열국시대’라 일컫는데, 가장 유력했던 나라가 북부여, 옥저, 동예, 낙랑국, 원시 고구려(고리국), 남삼한(진한, 마한, 번한) 등이다.
이때는 명분상 가장 강한 나라가 고조선 왕실을 계승한 패자(영도국)로 군림했는데, 맨 처음 패자로 등장한 나라가 북부여였다.
북부여는 BC 239년에 ‘해모수’에 의해 건국되었다. 해모수는 BC 195년까지 통치를 했으며, 북부여는 BC 58년에 고구려가 건국될 때까지 6명의 단군이 재위를 했다.
해모수는 중국의 진시황과 동시대인데, 당시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것은 흉노 뿐 아니라 북부여를 막기 위해서였다. 즉 만리장성 동쪽은 전부 우리 동방민족의 세력권이었던 것이다.
북부여의 여섯 번째 단군인 고무서 단군에게는 아들이 없고 ‘소서노’라는 딸이 있었다. 소서노와 결혼 사람이 바로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성제다.
고주몽성제는 북부여를 계승해 오다가 BC 37년 ‘고구려’라고 국호를 바꾼다. 『삼국사기』에 보면 고구려 건국이 BC 37년, 백제는 BC18년, 신라는 BC 57년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본래 고구려 건국은 BC 58년이며 처음에는 ‘다물’이라는 연호를 썼다. 그런데 BC 37년에 국호를 ‘고구려’로 바꾸고 ‘평락’ 이라는 연호를 쓰게 되면서 이때부터를 고구려 건국으로 잡은 것이다.
열국시대를 지나 사국시대로 넘어가는데, 부여, 옥저, 동예는 고구려에 귀속되고, 남삼한 중 마한은 백제에, 진한은 신라에, 번한은 후에 가락국(가야)에 귀속된다. 그리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사국시대(삼국시대가 아님)가 열려 중국의 전국시대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게 된다.
대진국(발해)과 통일신라의 남북국시대
사국시대 이후 시대를 우리는 통일신라라고 배웠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통일신라가 아니라 남(통일신라)과 북(발해)의 ‘남북국시대’로 이어진다. 신라의 통일은 사실상 대동강 이남으로 한반도의 2/3밖에 차지하지 못한 불완전한 통일이었다. 반면 압록강 이북의 넓은 고구려의 고토(古土)에는 고구려의 계승자인 대진국(大震國: 발해渤海, 669~926)이 건립되었다.
AD 668년에 고구려의 수도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함락되었지만 압록강 북쪽에는 항복하지 않은 고구려의 11개 성과 고구려 군으로 참전한 말갈족이 여전히 항거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유장 대중상(大仲象)과 대조영(大祚榮)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의 여러 부족을 거느리고 백두산 아래 송화강 유역에 새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진(震, AD 669년)이라 하였으며, 신라에서는 북국(北國)이라 불렀다. 이후 국호가 발해, 해동성국으로 불리게 된 것은 다음과 같다.

국초에는 나라의 국세가 아직 떨치지 못하여 당과 강화를 맺고자 했는데 국호를 둘러싸고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대진국은 기왕이면 대외적으로 고구려라 하고 싶었고 당은 말갈이라 부르려 했다. 옥신각신하다 서로 한발 짝 물러나 당에서 타협안을 내놓은 것이 발해(渤海)다. ‘해동(海東)은 당신들 땅이다’라는 뜻이다. 대진국은 이것을 일단 수용했으나 스스로 고구려의 후계자이자 부흥자임을 자임했다. 발해 제3대 문왕 때 일본에 보낸 국서에도 ‘고구려왕’이라고 자칭했다. 훗날 대진국이 국세를 크게 떨쳐 마침내 당을 넘보게 되자 두려워진 당은 발해라 하지 않고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는 극히 호화로운 국호를 바쳤다. 대진국은 신라와 평화적 국교는 없었지만 반도의 방파제 구실을 하며 민족사의 마지막 전성기를 구가했다.
반면 신라는 백제를 차지하고, 정복한 고구려를 당에게 헌상하는 파렴치한 민족반역죄를 범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신라의 삼국통일을 ‘망국통일’이라고 부르고 또는 ‘통일이 아니다’는 과감한 주장도 한다. 또한 신라는 상고시대로부터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믿어왔던 상제신앙을 버리고 외래종교인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임으로써 민족의 전통을 무너뜨리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겸손하게도 스스로 당의 신하가 되어 자주성마저 팽개쳤다.
따라서 고조선의 국통은 북부여로, 북부여는 고구려로 그리고 이후 대진국으로 이어졌다고 봄이 가하다.
통일신라 말기, 한반도는 후삼국으로 다시 분리되고 이를 고려 왕건이 다시 통일(AD 936년)했다.
그런데 이에 앞서 대진국은 926년 수도 상경이 거란군에게 함락되면서 발해 백성이 수차례에 걸쳐 집단적으로 고려로 망명해갔다. 그리하여 고려가 후삼국과 발해 유민까지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통일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통일은 되었지만 요동의 옛 영토의 대부분은 남의 땅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고려 태조 왕건이 오로지 후백제 정복에만 열을 올려 기울어가던 대진국을 돕는 데는 무심했기 때문이다. 반도통일을 달성한 뒤에 부랴부랴 북진정책을 한답시고 거란 사신을 귀양보내고 선물로 가져온 낙타는 만부교에서 굶겨 죽였으니 때늦은 후회일 뿐이다.
발해가 멸망하면서 우리 한민족의 역사무대는 진(震)방에서 간(艮)방으로, 대륙사에서 반도사로 좁혀졌다. 발해가 한민족(韓民族)으로서는 대륙의 마지막 주인이었던 것이다. 이후 우리 역사는 민족수난기로 접어들어 중세의 고려·조선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환국시대로부터 배달환웅, 단군조선, 열국시대, 사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국사 교과서에서 오로지 한사군, 신라 중심으로 배운 우리 국사가 얼마나 기만적이고 날조된 역사였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은 한반도 구석자리에 보잘 것 없는 나라로 위축되었지만 우리 선조들은 동북아의 광활한 영토를 호령하며 인류문명의 시원을 이루었던 웅대한 민족이었던 것이다. 이제 원시반본의 우주의 가을개벽시대를 맞아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역사를 되찾아야 하고 또한 되찾게 된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 역사는 왜, 누구에 의해 그토록 뿌리깊이 왜곡된 것일까?
2. 인류의 역사를 여는 대한大韓
道紀136년 양력 5월 13일, 증산 상제님 어천치성 종정님 말씀, 월간개벽 2006.06월호
오늘 5월 둘째 주 상제님의 대학교 교육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개벽 실제상황』 2부 우리 한민족의 시원역사에 대해, 그 핵심을 함께 정리해 보기로 하겠어요.
우리는 한국인이면서도 어린 시절부터 대학 문을 나올 때까지 한국의 고대사를 제대로 배운 바가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시원 역사를 잘못 알고 있다. 무엇이 기본부터 잘못되어 있는지 제대로 지적해 준 사람도 거의 없다. 아니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이 바쁜 세상에 우리는 뿌리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되는가? 왜 시원 역사를 알지 못하면 앞으로 맞이하는 가을 대개벽기에 진리를 찾을 수 없고 살길을 만날 수 없는가? 동북아의 역사가 몰락하여 너무도 작아져버린 이 한반도, 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왜 제대로 알아야 되는가? 왜 그 속에 인류 구원 문제의 핵심이 들어 있는가?
『개벽 실제상황』 1부 정리
지난번에 『개벽 실제상황』 1부를 정리했다. 1부는 이 책 전체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반, 바탕, 근본이 되는 총론격이다.
우리는 1부에서 이 책 전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기른다. 그 내용이 뭐냐면,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인간으로 태어났는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광막한 우주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아주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 인생과 대자연의 신비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럼 이것을 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나와 이 우주 자연계를 하나로 통찰할 수 있는 변화 법칙은 없을까? 그게 바로 음양론인데, 이 음양론에 의해 ‘인간이 우주 속에서 언제 어떻게 태어나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지금 인류는 어느 시점에 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시간의 문제다.
이 시간의 문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순수객관, 자연의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즉, 천지일월, 이 우주 천체가 규칙적인 순환운동을 하면서 생성해 내는 시간의 물결, 시간의 순환 과정이 있다. 그 가장 작은 단위가 하루의 변화이며 그보다 좀 큰 것이 지구 1년의 변화이고, 아주 크게는 인간이 처음 우주에 태어나 성장하고 완성되는, 우주의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우주의 사계절의 시간대다. 그런데 이 작고 큰 하루와 지구 1년, 우주의 1년 사시 변화는 그 법칙이 같다. 여기에 매력이 있다.
이 사계절의 변화 법칙에 대해 증산 상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천지를 주재하여 다스리되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이치를 쓰나니 이것을 일러 무위이화라 하느니라. (道典 4:58:4)
생장염장, 천지는 봄이 되면 만물을 낳고 여름엔 기르고 가을에는 거둔다, 추수를 한다. 완성을 시키는 것이다. 만물이 알든 모르든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는다. 모든 변화가 성장에서 성숙 통일로 간다. 그걸 거부해도 죽고 몰라도 죽고, 또 알아도 죽는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 가을의 변화에!
가을에는 거둔다! 이 거둔다는 것, 이것이 가장 무서운 구원의 언어이다. 온 우주가 ‘너의 생명을 내놓으라! 너는 성숙됐느냐?’ 이걸 묻는다.
그럼 인간은 무엇으로 성숙되는가? 그건 오직 진리로써만 가능하다. 이번에는 진리를 못 만나면 죽는다. 진리를 만나야 앞으로 오는 가을 우주의 변화를 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하늘땅 천지에 대해, 현실 역사에 대해, 한민족의 역사 변화 과정에 대해, 미래 역사에 대해 그 틀을 알 수 있다. 그게 오늘 저녁에 공부하려고 하는 한 글자, ‘간(艮)’소식에 들어있다.
사람은 무엇보다 역사를 알아야 한다. 역사를 모르면 바보가 된다. 정말로 무지한 인생을 살다 마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를 아는 공부가 가장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 시원 역사의 맥을 정확하게 잡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이 문제 때문에 턱에 걸려서 큰 일꾼으로 자라지 못한다. 머리가 안 열리고 진리를 쉽게 말할 수가 없다.
진리의 삼박자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인가?
서양 사람들은 진리란 참된 것(truth)이라 했고 동양에서는 참 진 자에 이치 리 자를 써서 참된 이치라고 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참 이치, 이법이 있다, 만물을 낳아 길러서 그 존재의 목적을 이루는 어떤 창조의 법칙, 만물 생성의 법칙, 변화의 법칙이 있다. 그 변화의 이법이 바로 진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진리는 이법만으로 구성돼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구성하는 요소가 두 가지 더 있다. 신도와 역사! 이법과 신도와 역사, 그것이 증산도에서 말하는 진리의 구성 틀, 진리의 기본 구성 원리인 이신사(理神事)다.
- 이법(理法)
이(理)는 우주의 순환법칙을 말한다. 인간 농사짓는 우주 1년 이야기, 선후천 개벽관, 이것은 우리가 들으면 안다. 깨달으면 되는 것이다.
즉, 자연에는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큰 질서가 있다. 우리 증산도에서는 이 우주 만유가 변화하는 근원이 되는, 이 우주 공간에 살고 있는 모든 것을 수용하는 거대한 우주의 제 1법칙을 얘기한다. 그것이 생장염장이다.
생장염장은 우주 1년, 우주의 봄여름과 가을겨울, 선천과 후천 129,600년을 한 주기로 인간농사 짓는 우주의 1년 창조 이야기다. 이것을 알면 우주의 창조법칙에 대해서, 그 속에 살고 있는 천지와 만물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삶의 목적에 대해서, 우리가 오늘 저녁에 살펴보려고 하는 역사의 태동과 발전 과정, 그리고 궁극의 목적지에 대해서 그 근본을 깨치게 된다.
- 신도(神道)
그런데 진리는 그것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 우주원리, 자연 속의 질서에 대해 완전히 도를 통했다고 해서 진리에 대해 뭘 깨쳤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건 진리의 반쪽도 안 된다. 진리의 또 다른 얼굴이 있다. 그건 직접 체험을 해 봐야 안다. 직관을 해서 직접 봐야 된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이신사에서 진리의 두 번째 박자, 진리의 중심 박자인 신도(神道), 영적 세계다.
모든 만물의 본성은 영이다. 나도 내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고, 동정 활동을 한다.
인간에게는 정(精)과 신(神)이 있다. 정기가 떨어지면 신으로, 신명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 정기를 순환하고 명화시켜서 신의 명(明)을 열어야 한다. 그래서 ‘아! 보인다. 인제 밝아졌다. 내 마음이 밝아졌다. 내 마음이 대자연의 마음, 하늘의 마음으로 성숙돼 간다. 내가 이제 천지마음이 됐다. 내가 바로 천지다. 살아있는 천지의 마음 자체가 됐다.’이렇게 되어야 한다.
신도를 모르면 짐승처럼 살게 된다. ‘신이 어디 있어? 죽으면 끝이지. 세상은 그냥 즐기는 거야. 젊었을 때 열심히 벌어서 써야지, 늙어지면 못 노나니 젊어서 노세.’ 그런 인생으로 간다.
이법은 합리적으로 깨치는 것, 이성적인 것이지만 신도는 합리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왜냐하면, 영적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밤에 잠을 자는데 천상에 올라가 돌아가신 할머니를 만났다거나 또는 죽은 남편을 만났다거나 죽은 어린 자식을 만났다. 그래서 한창 놀고 있는데 누가 와서 소리를 질러 확 깼다?
그럴 경우 영적 생활을 하는 사람은 ‘내 영이 천상에 올라가서 실제로 그들을 만난 거다’ 하는 걸 생생하게 안다. 그리고 올 때는 그 머나먼 천상에서 1, 2초, 2, 3초 만에 돌아온다. 시공을 초월해버리는 것이다. 영적 세계는 그런 세계다.
신도는 직접 체험을 해서 내 영적인 눈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진리를 들을 줄 알고 온몸으로 느낄 줄 알고 영적으로 볼 줄 아는 순수 감성이 있어야 된다.
- 인사(人事)
이성적, 합리적인 세계, 수학적인 세계인 천지 이법과 이를 초월한, 시공을 초월한 신도 세계, 이 두 얼굴이 합해져야 진리의 기본 틀이 구성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인간이 천지의 이법과 천상 신도의 꿈을 이뤄나가는 총체적인 과정이 바로 역사다. 이 이신사 가운데 진리의 열매, 진리의 현실적인 참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인사, 사람일, 다른 말로 역사를 아는 게 가장 어렵다.
천지의 이법에는 틈새가 없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온다. 한 번도 어기질 않는다. 영원히 변치 않는다. 그게 진리다. 진리는 아주 단순한 거거든. 저녁이 지나면 밤이 오고 밤이 깊으면 또 새벽이 온다.
그리고 인간이 태어나 살다가 죽으면 영적인 존재, 신명으로 태어나 신도에 가서 사는데, 이 신도의 삶도 참으로 복잡하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복잡한 게 인간의 세계다. 자연과 천상의 신도가 만들어 낸 현실 인간의 역사, 이것이 복잡하기로 말하면 이법이나 신도보다도 백 배, 천 배, 만 배, 억만 배 이상 복잡하다. 지나간 인류역사의 모든 삶의 과정이 다 여기에 축적돼 있다.
그래서 어렵기는 하지만 역사 공부가 가장 재미있으며, 역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가장 성숙된 지혜가 요구되는 것이다. 역사의 틀, 역사의 대세를 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름철 말에 인간 세상에 오셔서 가을 신천지 새 세상을 열어 놓으셨다. 그 결론이 무엇인가? 인간의 새 역사 판을 짜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선천의 기성 종교와 가을 문화를 여는 열매 문화인 증산도는 진리의 성격, 진리 정신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
예를 들면 유가는 유지범절(儒之凡節)이라고 해서 범절, 예의를 알고 실천하여, 큰 틀로는 내가 성인이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불가는 심법을 닦는 것을 주장했다. 천지 만물은 어떤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는데, 그것이 하늘의 마음이요 땅의 마음이요 인간의 마음이다. 마음은 하나, 곧 일심이며, 그 일심을 깨치는 것이 불(佛)이다. 불지형체(佛之形體), 불은 우주만유의 형상 그 자체 속에서 그 형상의 체를 잡으라는 것이다. 아주 매력적이고 강력하다. 뱃심 센 소리는 전부 불가에서 나왔다. 그런데 여기도 궁극의 해답이 없다. 그것은 진리의 첫 박자인 우주 이법을 완전히 깨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증산도는 바로 우주 이법을 먼저 밝혀준다. 천지 이법을 알아야 인간이 뭔지를 알고 인간의 역사를 안다. 그런 교설을 전한 성자들이 천상에서 왜 내려왔는지, 그들의 사명이 뭔지, 그들 진리의 한계가 뭔지를 제대로 알 수 있다.
뿌리 역사의 실체, 신교(神敎)
역사란 뭐냐? 왜 역사를 알아야 되느냐?
본론으로 들어가서 우리 한민족의 태고 역사와 전체 역사의 발전 과정, 그 맥을 정리한 2부의 결론, 그 주제가 무엇인가? 이것을 제대로 알아야 인류문화의 원 뿌리, 인류 시원 문화의 실체요 알맹이인 신교(神敎)를 알게 된다.
신교는 하나님의 설교[이신설교(以神說敎)]에서 온 말이다. 인류문화가 다 이 신교에서 나왔다. 모든 종교와 동서 철학도 전부 신교에서 나왔다. 인류사에서 신교의 위격이 그렇게 엄청난 것이다.
신교를 모르면, ‘신교는 하나님을 삼신 하나님으로 말한다고? 그거 참 이상하네. 어떻게 하나님은 한 분인데 삼신이라고 하지?’ 이렇게 된다. 삼신 하나님과 상제님의 관계가 머릿속에서 확 깨지지 않는다.
삼신 하나님은 형상이 없이 이 우주에 편만해 있는 거룩한 영적인 실재로 계신다. 수행을 해 보면 그걸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삼신 하나님, 조물주의 조화권을 그대로 쓰시는, 형상을 하고 계신 참 하나님이 상제님이다.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이걸 깨달았다. 하나님의 두 얼굴인 원신(元神)과 주신(主神)!
하나님을 알려면 이 원신과 주신의 음양 일체관계를 알아야 된다. 이 문제를 알고 나면 ‘아, 하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시는가? 아버지 하나님이 오심으로써 선천 우주가 끝나고 가을 우주 새 문화로 들어간다. 그게 『개벽 실제상황』 3부의 끝이고, 하나님이 오셔서 새 역사 판 짜 놓으신 내용이 4부다.’라는 걸 안다.
2부에 인류의 창세 역사가 나오고, 3부에는 뿌리 문화가 나오면서 그 결론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인간으로 오신다. 그 하나님이 새 역사 판 짜 놓으신 대로 전개되는 과정이 바로 4부의 내용이다. 4부의 결론이 개벽 실제상황이다. 남북 상씨름이 넘어가고 간도수가 실제 새 우주 문화를 여는 상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5부에서는 마침내 모든 역사가 정리되어 하나님의 우주창조의 목적이 완성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세상에 우주의 조화낙원이 건설되는 것이다.
진리의 의혹을 푸는 열쇠가 이 5부작에 다 들어있다.
가을의 정신
2부 대한의 문을 통과해야 제3부 새 역사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새 역사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 준비과정으로 2부, 우리 한민족의 참 모습, 진정한 한국인이 되는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한다.
자, 2부 들어가기를 함께 읽어보자.
“가을바람이 불면 낙엽이 지면서 열매를 맺는 법이니라” 하신 상제님 말씀대로, ‘인존의 씨’만 남기고 천지에서 생명을 다 거두어가는 가을개벽! 가을은 인간과 만물이 생명의 근원, 진리의 뿌리로 돌아가는 때다. <$z9>(『개벽 실제상황』 146쪽)
여기 보면 항상 진리의 주제가 먼저 나오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을 한다. 진리의 주제에 대해 표현을 달리하면서 여러 차례 정의를 내려준다.
먼저 “가을바람이 불면 낙엽이 지면서 열매를 맺는 법이다.” 이렇게 가을을 얘기하고 가을개벽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두 번째 정의를 보면 “가을은 인간과 만물이 생명의 근원, 진리의 뿌리로 돌아가는 때다.”라고 했다. 이 말씀을 읽고 ‘아, 가을은 인간과 만물이 진리의 근원, 뿌리로 돌아가는 때로구나.’ 하는 걸 느끼면서 읽은 사람과 그냥 훌렁 읽고 지나간 사람과 깨지는 것이 다르다.
세 번째 정의는, “가을이 되면 원시반본의 도에 의해 우주의 통치자이신 상제님께서 한반도에 강세하신다.” 이렇게 나온다. 그러면 ‘아, 가을의 정신은 원시반본의 도다.’ 이렇게 작은 정의가 정리된다.
“우주의 통치자이신 상제님께서 한반도에 강세하신다.” 이것을 읽으면서 ‘아, 이것이 가을의 정신, 가을의 섭리, 가을의 이법, 가을의 우주 법칙이구나.’ 이렇게 쉬운 말로 자꾸 풀어본다. 이렇게 해야 단락 속에 있는 핵심 의미를 정확하게 잡아끌고 나갈 수 있다.
그런데 또 여기 보면 “지구촌의 정치, 종교, 경제, 문화 등 모든 변혁의 기운이 인류 시원문화의 산실이자 심장부인 동북아 조선으로 몰려든다.”고 돼 있다.
그럼 좀 배웠다는 사람은, ‘야, 왜 이런 결론이 나오냐? 근거도 없이!’ 이렇게 시비를 건다. 그 근거가 무엇인가? ‘그것은 만국활계남조선이라는 말씀 그대로 이 남쪽 조선에 인류 구원의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해답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지금 한반도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구촌의 유일한 분단국으로서 선천 상극의 이념 대결이 가장 극렬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장이다.”라고 한반도의 현실을 짚어주고 있다. 바로 이 말씀이 2부의 주제를 이끌어내는 핵심 문장이다.
한민족 비극의 원인
수천 년 동안 우리나라는 국권을 완전히 상실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일본에 당했다. 우리나라는 왜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겼는가?
한민족의 비극은, 본래의 문화가 왜곡 말살되어 혼이 빠져서 무기력한 약소국으로 전락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걸 잘 알아야 된다. 오늘 말씀의 전체 주제를 좀 힘있게 온몸으로 체험적으로 느끼려면, 우리 민족이 왜 약소국이 되어 망했는가를 알아야 된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은 외래 정신에 물들어서 한국인으로 살지를 못했다. 사대주의에 빠져서 중국을 큰집으로 모시고 우리나라는 작은 집이 되어 왕이 옥새 하나를 마음대로 만들어 찍지 못했다. “너희들은 제후국이니 용을 새기지 말고 거북이를 새겨라.” 해서 이조 5백 년 동안 조선의 왕들이 옥새에다 거북이를 새겨서 결재를 했다.
그러다가 조선에서 처음으로 옥새에 용을 새긴 왕이 조선 말 고종 임금이다. 도기 27년, 서력 1897년, 주변 강대국들의 힘이 팽팽해지자, ‘요 때다!’ 하고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大韓帝國, 1897~1910)으로 바꾸고 칭제건원을 했다. “나는 왕이 아니고 황제다!” 하고 빛 광(光) 자에 호반 무(武) 자, ‘광무(光武)’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썼다. 고종의 역사의식이 얼마나 강했겠는가! ‘우리 민족의 시원역사의 혼을 되찾겠다!’하고 지금의 조선 호텔 자리에 원구단을 쌓고 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나오기까지
이제 여기서부터 중요한 주제들이 많이 나온다.
‘중국의 중화사관과 일제의 식민사관에 찌들어 대한의 혼을 상실한 한민족!’
지금 우리나라의 국호는 대한민국이다. 이 대한민국은 어디서 온 것이냐? 이것을 아는 한국인이 별로 없다.
고종황제가 1897년에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꿨다. 그리고 그 아들 순종이 임금 노릇을 해 보지도 못하고 일본에게 나라를 뺏기면서 물러났다.
그 9년 뒤 기미(己未, 1919)년에 한반도에서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나고, 그 해에 임시정부가 세워진다. 국내에서 만세운동을 하다가 한성 정부를 만들어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운 것이다. 이것은 최초로 근대국가를 만들려는 운동으로서, 우리 민족사의 국통맥에서 보면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다.
작게 보면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바뀐 것인데, 제국이라 함은 그 주권이 임금님에게 있었기 때문이고, 임금이 사라지고 주권재민에 의해 주권이 백성에게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라고 한 것이다. ‘제’에서 ‘민’으로!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살기에 바쁘다. 그래서 ‘야, 밥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이런 첨단과학 세상에 우리가 왜 케케묵은 역사를 알아야 되냐? 왜 고대 역사를 알아야 되냐? 그게 지금 밥 먹고 사는데 무슨 도움이 되냐?’ 고 묻는다. 그에 대한 모든 답이 이 책에 나와 있다. 그 중 하나가 ‘역사를 모르면 미래도 없다’는 것이다. 과거를 모르고 어떻게 현재를 아는가 말이다.
우리 한민족은 지금 족보도 없는 정신적 고아가 됐다. 내가 진정한 한국인으로 살려면, 우리 민족의 현실을 제대로 알려면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 된다. 아무리 지구촌의 역사 현실 분석을 잘하고 정치 대세를 잘 아는 국제정치의 대가라 해도, 역사를 모르면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모든 역사 현실은 과거의 작품이다. 그 뿌리, 근원으로 돌아가 시원역사, 진정한 역사의 뿌리부터 알아야 한다.
그런데 뿌리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속성이 있다. 나무뿌리처럼 스스로 뿌리 역할을 하기 위해 숨는다. 그러나 아무리 큰 나무라 해도 뿌리에서 생명을 받아서 서 있는 것 아닌가. 뿌리가 말라버리면 생명 전체가 시들고 무너진다. 살다가 마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정신이 건강하고 사물을 잘 보고 자자손손 잘 되는 건 뿌리가 건강하고, 조상 줄이 좋다는 뜻이다. 어떻게 해서 유대족이 이 세계를 잡아 흔드는가? 뿌리가 튼튼하기 때문이다. 그게 신앙으로 다져졌거든. 기도를 많이 하고, 영성을 계발해서 지구촌 문화를 뒤흔드는 것이다.
현재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어찌 미래의 새 역사를 열 수 있는가. 어제를 모르고 어떻게 오늘의 현재를 알며, 현재를 모르는데 어떻게 내일을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 한민족의 현실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본래 역사를 알아야 된다. 진정한 한국인이 되기 위해서는 시원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된다.
가을은 천지간의 모든 시비를 바로잡는 때다. 무엇이 잘 된 것이고 무엇이 잘못 된 것인지,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시시비비를 바로잡는다.
가을개벽을 맞이하여, 우리는 묵은 기운을 깨부수는 깊은 자기반성과 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한 잘못에 대한 처절한 참회를 바탕으로, 민족사 인식을 완전히 개벽시켜야 한다. 속히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 한민족의 신원을 회복하고 잠자는 민족혼을 일깨워, 신천지의 추살바람이 가장 먼저 닥쳐오는 개벽의 땅에 태어나 ‘간(艮)도수 섭리’를 실현해야 하는 주인공으로서 천지 대업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다 함께 가을개벽의 비밀 코드를 풀면서 동방 한민족의 뿌리역사, 그 국통(國統)맥을 찾는 순례의 길을 떠나보자. 이것이 2부의 핵심 내용이다.
알기 어려운 가을개벽의 변화
가을개벽의 신문명이 오는 대자연의 변화, 이것이 가장 알기 어려운 진리의 깊은 세계다. 옛날 성자들도 이걸 철저히 깨치지 못했다. 영이 열려서 ‘아, 개벽이 오는구나.’ 하는 걸 몇 줄씩 적어 놓았을 뿐, 가을 개벽기를 맞이한 오늘의 현실에서 보면 사실 그건 큰 깨달음도 아니다.
여기에는 우주의 시간 질서, 우주의 계절이 바뀌는 문제, 즉 분열에서 통일로, 여름에서 가을로 들어가는, 천지 이법이 바뀌는, 우주의 진리 틀이 바뀌는 큰 생사의 문제가 담겨 있다.
선천 성자들이 낸 여름철 문화, 여름철 인간의 정신으로는 아무리 깨달았다고 해도 가을 우주의 이법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지금 너무도 오묘하고 깊은 진리의 세계인 가을 대개벽이 오는 대자연의 변화를 탐험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아들, 천자가 다스리는 나라
- 천자란?
그러면 천자국에 대하여 살펴보자.
“시두손님인데 천자국이라야 이 신명이 들어오느니라.”
하늘에서 시두를 몰고 오는 신명이 내려오는데, 천자국이라야 이 시두손님이 들어온다는 말씀이다.
천자란 무엇인가?
천자는 ‘천제지자(天帝之子)’의 약자로 ‘하나님의 아들’, ‘우주의 주재자이자 천상의 통치자[天帝]이신 상제님의 아들’을 칭하는 말이다. 예로부터 천자가 다스리는 나라를 천자국이라 불러왔다.
고구려의 창업 시조 고주몽이 동부여에서 탈출하여 엄리대수(淹利大水 ; 지금의 송화강)에 다다랐다. 앞은 강물에 막히고, 뒤에서는 동부여의 군사들이 쫓아오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 때 주몽이 강의 수신(水神)에게 이렇게 외친다.
“아시천제지자(我是天帝之子)!”
‘나는 천제의 아들이다! 나는 하늘 하나님, 상제님의 아들이다! 나는 천자다!’라는 말이다. ‘천제지자’, 즉 ‘천제의 아들’이라는 말을 줄여서 ‘천자’라고 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신의 아들(Son of God)’이라고 하는데, 이 ‘하나님의 아들’ 문화가 기독교에도 있다. 그들은 수도 없이 ‘주님’을 찾다가 천상으로 올라간다. ‘주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이 주님을 보내셨다는 것이다. 주(主) 사상, 그 문화의 원 뿌리가 동방 조선의 천자사상이다.
또 신교(神敎)를 신앙했던 동방문화에서 천자는 ‘국가의 통치자’를 의미했다. 천자는 인간세계를 대표하여 하늘(상제님)에 제사를 올렸다.
- 천자문화의 본향, 조선
천자문화의 원 고향은 어디일까?
천자라는 말은 중국 한족이 먼저 쓴 게 아니다. 우리 동방 한민족이 먼저 썼다. 그 사실이 중국 사람의 기록에 있다. 후한시대의 채옹(蔡邕)은 『독단(獨斷)』에서 천자제도의 근원에 대해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천자는 동이족 임금의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 땅을 어머니로 섬기는 까닭에 하늘의 아들이라 한다(天子, 夷狄之所稱, 父天母地故, 稱天子).”
중국인들은 주변의 다른 민족에 대해 ‘동이서융남만북적(東夷西戎南蠻北狄)’이라 하여 오랑캐로 불렀다. 우리 민족을 가리켜 동방의 큰 활을 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동이족이라고 했다. 중국 중심의 천하사상(중화사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아들, 제왕을 부르는 ‘천자’라는 호칭은 동방사람이 먼저 썼다고 밝혀 놓았다.
이 내용을 보면 천자는 부천모지, 하늘을 아버지로 삼고 땅을 어머니로 삼았다. 천자는 천지(天地)의 아들이다. 하늘땅 천지부모의 아들인데, 이것을 하늘로 상징해서 하늘의 아들, 천자라고 했다. 천자는 본래 천지의 아들인 것이다.
- 천자에 대한 예(禮)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천자국임을 입증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고대 역사를 살펴보면 주변의 제후들이 천자에게 예를 올린 사건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4,300년 전, 요임금으로부터 정통을 물려받은 순임금이 태산에 올라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동방의 천자’를 찾아가 조근(朝覲)하는 예를 올렸다. 이 내용이 『서경』에 “동순망질 사근동후(東巡望秩 肆覲東后)”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순망질(東巡望秩), 동쪽으로 순행하여 산천에 제를 지내고 사근동후(肆覲東后), 동방의 임금님을 알현했다. ‘사근동후’에서 ‘근(覲)’은 『강희자전』에 ‘하현상(下見上)’,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뵙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근친(覲親)가다, 조근(朝覲)한다고 할 때의 근 자로 ‘제후가 천자를 뵙는다’는 뜻이다.
왜 순임금은 하나님께 제를 올리고 나서 동방의 천자를 찾아뵈었을까?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동방 고대문화와 역사의 비밀이 다 들어있다. 순은 “제가 이제 천하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하고 천지의 주인이신 상제님께 고하고 나서, 자기들을 다스리시는 동방의 천자님을 찾아뵙고 예를 올린 것이다.
여기서 순임금이 알현한 ‘동후(東后)’는 단군성조님을 말한다. 사근동후란 고조선의 제후 순이 동방의 천자인 단군왕검을 찾아뵈었다는 뜻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후’ 자를 제후 후(侯) 자로 해석을 하여 ‘가서 동방제후를 만났다’고 왜곡해 놓았다. 그러나 분명히 제후 후 자가 아니고 임금님 후(后) 자가 아닌가.
- 조선의 천자문화가 어떻게 중국으로 넘어갔을까?
그러면 조선의 천자문화가 어떻게 중국으로 넘어갔을까?
앞의 기록으로 보면 순임금은 동방 천자로부터 임명받은, 천자의 영향력 하에 살던 제후였다. 그런데 4,300년 전인 고조선 초기, 요임금 말엽부터 순임금 때까지 동북아 지역에 9년 홍수가 일어나 중국 일대가 물바다가 되었다. 이때 요임금이 치수관인 곤에게 물을 다스리라고 하였으나 곤은 실패했다. 곤은 훗날 하(夏)나라를 연 우(禹)임금의 아버지다. 옛날에는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나 치수하는 일 등을 가가계승했다. 그래서 우가 아버지를 이어 치수를 맡았으나 방법이 없다. 이에 아주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더니 천상의 신인이 나타나 ‘어디어디를 가면 누구를 만나리라!’는 계시를 내려 주었다. 해서 완위산(宛委山 : 회계산)에 가서 부루 태자를 만나게 된다.
그 때 단군성조의 맏아들 부루 태자(夫婁太子 : 2세 단군)는 단군성조의 명을 받고 오행치수지법(五行治水之法)이 담긴 《금간옥첩(金間玉牒)》을 우에게 전수해 주었다. 이 내용이 『환단고기』와 후한(後漢) 시대의 조엽(趙曄)이 쓴 사서 『오월춘추(吳越春秋)』에 나온다.
우는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9년 홍수를 다스리는 데 성공한다. 그 공덕으로 민심을 얻은 우는 후에 하나라를 열었다. 하나라는 순임금으로부터 법통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당시 우에게 전한 《금간옥첩》 속에는 치수의 요결뿐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천자의 도와 동방 고조선의 정치제도, 문화가 수록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국가 경영 지침서를 내려준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라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큰 법도, 〈홍범구주(洪範九疇)〉다. 이를 줄여서 ‘범주’라고 한다. 영어 카테고리(category)의 번역어 어원이 바로 4,300년 전 〈홍범구주〉다.
공자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하여 ‘조술요순(祖述堯舜)하시고 헌장문무(憲章文武)하시니라’(「중용(中庸)」30章). 즉 ‘요임금과 순임금의 사상, 심통, 법통을 근본으로 하고 문왕과 무왕의 국가통치 제도를 본받았다’고 하였다. 이 요순임금의 국가 경영 지침서, 그것이 바로 부루 태자가 전한 홍범구주인 것이다.
홍범구주의 다섯 번째가 황극(皇極)사상이다. 황극에 대해 주자는 “황극은 천자의 보위(寶位)다.”라고 정의했다.
황극은 나라의 임금님이다. 하늘도 땅도 인간도 전부 임금님이 주인이다. 그만큼 천자의 자리가 지엄하기 때문에, 천자의 역할, 천자의 영향력이 너무도 엄청나서 ‘천하에 미친다’고 했다. 또한 모든 인간의 삶과 죽음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황극은 천하지중(天下之中)이다’라고 했다. 바로 이 황극으로부터 천자사상이 나온 것이다.
천자제도의 기틀, 동양문화의 근본정신이 담겨있는 《금간옥첩》이 중국에 전해짐으로써 동방 고조선의 천자문화가 본격적으로 중국 문화의 토양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계기가 된 역사적인 대사건, 세기적인 대사건이 바로 9년 홍수이다.
이후 전국(戰國 : 전국시대 BCE 403~ BCE 221)을 통일한 진(秦)왕 정(政)은 스스로 천자국을 자처하며 자신을 시황[秦始皇]이라고 칭했다. 진시황 이전의 중국의 역대 통치자들은 다 왕이었다. 흔히 성왕이라 하는 요, 순, 우, 탕, 문 무왕도 다 왕이었다. 고대 중국을 천자국으로 묘사한 것은 모두 한(漢) 대 이후 중국 사가들에 의한 조작이며 윤색인 것이다.
- 황제의 칭호를 되찾은 고종
천자문화의 본향인 조선에서는 고조선 이후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 천자 칭호가 계승되어 왔다. 우리 민족은 하늘의 자손, 천제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갖고 성신의 가르침[神敎]을 받아 내려 인류를 다스려 온 천손민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개벽의 땅 한반도로 내몰린 동방 조선은 중국의 거듭된 침략을 받으면서 차츰 중국의 속방으로 전락해갔다. 그리하여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고려 25대 충렬왕에 이르러서는 그 호칭을 왕으로 내려 부르게까지 되었다.
그렇게 사대주의에 빠진 나약한 역사의식으로 600년 세월을 보내다가, 19세기에는 국력이 급격히 쇠약해져서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 때 본연의 역사정신의 푯대를 세워 천자국의 황통을 회복하려는 비장한 마지막 시도가 있었다.
조선의 실질적인 마지막 임금 고종은 1897년, 천자국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국호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로 즉위하였다. 고려 충렬왕 이후 약 700년 만에 황제라는 호칭을 되찾은 것이다.
그럼 여기서 궁금증이 들 것이다. 왜 고종임금은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썼을까? ‘대한제국’의 ‘대한(大韓)’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 ‘대한(大韓)’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늘에는 삼신, 땅에는 삼한으로, 삼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옛 조선[古朝鮮]은 조정을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다[分朝管境]. 이것을 삼한관경제라고도 한다. 관은 관리한다, 경영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국경을 셋으로 나누어 세 분의 왕이 각각 다스렸다는 뜻이다. 나라 이름은 조선인데 현실적으로는 요동의 진한, 요서의 번한, 한반도 전체 마한, 이렇게 삼한으로 다스린 것이다.
마한은 하늘의 정신, 번한은 땅의 정신을 상징한다. 그리고 천지의 주인, 천지의 중심인 태일을 상징하는 곳이 진한이었다. 진한의 강역은 만주지역이며 수도 아사달은 지금의 하얼빈 지역이었다. 그리고 남경, 즉 마한의 수도는 지금의 평양이며, 번한의 수도인 서경은 단재 신채호 선생에 의하면 안시성이다.
조선이 망국의 운으로 들어서자 고종임금은 웅대했던 옛 조선 삼한의 혼을 되찾기 위해, ‘삼한일통(三韓一統)’이라는 의미로 ‘대한’을 붙여서 ‘대한제국’이라 칭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학자들은 ‘삼한일통’의 ‘한’을 남삼한(南三韓)으로 얘기한다. 본래의 대륙삼한이 아니라 조선이 망하고 이주해 내려온 ‘백제, 신라, 가야’의 전신인 한강 이남의 삼한인 마한, 번한, 진한에서 왔다는 것이다.
아니, 과연 고종임금이 그 작은 삼한을 염두에 두고 국호를 ‘대한’으로 정했다는 말인가! 그건 정말로 잘못된 해석이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본래 옛 조선의 회복을 꿈꾸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했다. 광활한 대륙을 다스리던, 단군성조가 세운 조선! 요임금 순임금이 즉위를 하고 나서 큰 절을 올린 천자의 나라 동방 조선! 고종은 조선의 천자문화, 황제문화의 역사 정신을 그대로 드러내어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던 것이다.
고종 임금이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꾼 1897년. 이 때는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상제님의 성수 스물일곱이 되시던 해다. 원시반본의 섭리에 의해 이 땅에 강세하신 증산 상제님은 “내가 있는 곳이 천하의 대중화(大中華)니라.”(道典 2:36:8)고 하셨다. 알고 보면 고종황제는 상제님의 천명을 받들어 천자국의 종주로서 세계만방에 천자국임을 선포한 것이다.
- 개벽의 심장부, 천자국 조선
그러면 왜 시두를 비롯한 괴병이 하필 동방 한국에서 터지는 것일까?
개벽의 중심 땅 한반도에 산다는 것은 가을 대개벽의 태풍의 눈에 들어있는 것과 같다. 그것은 모든 문제의 근원을 보는 진리의 중심에 서 있다는 뜻도 된다.
우리가 한반도에 산다는 것, 여기에는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고조선은 조물주 삼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서 삼신 하나님의 삼신제도에 맞추어 나라를 삼한, 셋으로 나눠서 다스렸다. 그런데 이것이 중국의 마지막 왕조까지 그대로 전해 내려왔다.
중국 심양(瀋陽)을 가보면 청나라의 토대를 닦은 후금(後金 : 청淸의 전신)의 태조 누루하치[奴兒哈赤]의 궁궐이 있다. 그 고궁 마당에 들어서면 중앙에 누루하치가 앉던 누각이 있고 좌우로 부왕인 좌익왕(左翼王)과 우익왕(右翼王)이 앉는 누각이 있다. 그리고 좌우 각각 네 명씩 해서 총 여덟 명의 수령이 앉는 전각이 배치되어 있다.
한나라 원제(元帝 : 재위 BCE 49~BCE 33)의 후궁인 왕소군(王昭君)이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에게 시집가 연지(閼氏)가 되어 흉노 땅에서 생애를 마치는데, 그 기록에도 흉노의 좌현왕(左賢王), 우현왕(右賢王)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그 모든 것이 삼신사상에서 온 것이다.
이처럼 동북아는 중국이 됐든 우리 조선이 됐든, 저 멀리 몽골도 이 삼신문화의 틀에 따라서 나라를 통치했다. 그게 다 역사에 나오는 얘기다.
그런데도 지금 학자들이 이걸 못 본다. 왜? 우주의 창조섭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우주론을 모른다. 또 도를 안 닦아서 신관에 약하다. 진리의 근본을 못 본다. 그러니 역사에 눈을 못 뜨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역사의 뿌리를 다 잃어버렸다. 그들이 말하는 소위 정통사학에서는 백만 년이 가도 역사의 뿌리를 못 찾는다. 절대 찾을 수가 없다!
그럼 잃어버린 우리 문화의 혼, 역사의 뿌리를 누가 되찾는단 말인가! 오직 우리 삼신 하나님, 상제님의 도꾼들이 찾는다, 삼신 문화로써!
삼신 문화는 참으로 쉽고 간결하다. 그러나 그걸 깨치기가 극단적으로 어렵다. 삼신, 석 삼 자에 하나님 신 자. 얼마나 간단한가. 동서양의 인간도 여기서 나오고 하늘땅도 여기서 태어났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개벽의 중심 땅 한반도에 산다는 것, 즉 우리 신교 문화, 삼신 하나님 문화의 중심 땅에 산다는 것은 모든 문제의 근원을 보는 진리의 중심에 서 있다는 뜻이다. 우주 진리의 혼, 그 맥의 중심에서 우리는 지금 벌떡벌떡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 한반도에 깃든 구원의 섭리
한반도는 ‘개벽의 진원지’이며 동시에 ‘구원의 땅’이다! 이 한마디로 정의를 다 한 것이다.
원시반본의 가을개벽 정신에 따라 앞으로 개벽의 진원지, 구원의 땅인 간방 한반도에 가을 추살기운이 가장 먼저 닥쳐온다. 가을 대개벽은 시두가 터지는 것을 신호탄으로 하여 창생의 명줄을 끊는 참혹한 대병겁으로 진행된다. 병겁은 간방 한반도에서 처음 시작되어 세계를 3년 동안 휩쓸어 버린다. 대한민국은 이 개벽상황에서 인류를 건져내는 구원의 천명을 실천함으로써 인류문화의 ‘도주국(道主國)’으로 부상한다. 그리하여 태고시대 천자국의 위상을 되찾는다. 이것이 바로 ‘간(艮)도수’이다.
결국 가을개벽에 대한 이해는 신천지가 열리는 이법과 구원의 섭리인 간도수의 역사에 대한 깨달음의 문제다. 인류의 꿈이 바로 간도수에 담겨있다.
인류의 꿈은 간도수에
- 자연의 춤사위, 팔괘
간도수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팔괘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상제님께서는 “장차 도통(道通)은 건감간진손이곤태(乾坎艮震巽離坤兌)에 있느니라.”(道典 10:35:1)고 하셨다.
도통, 진리의 근본을 깨닫는 것은 이 팔괘의 이치에 있다. 음양의 법칙을 알아야 된다는 말씀이다.
나무 한그루의 생명 운동을 알면 팔괘가 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자, 나무 전체를 보면 뿌리와 줄기가 있다. 뿌리와 줄기는 음양 한 짝이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 땅 밑에 들어가 보이지 않는 ‘뿌리’가 ‘손(巽)괘’이고 뿌리에서 쭉 뻗어 올라오는 ‘줄기’는 ‘진(震)괘’다. ‘진’은 봄기운이다. 양 기운으로 쭉 뻗쳐 올라온다. 진의 성질이 그렇다. 진괘를 보면 두 효는 음이고 제일 아래에 양효가 있다. 음이 꽉 누르고 있어 반발을 하며 뻗는 양의 힘이 가장 강한 것이다. 그게 목(木) 기운이다. 그걸 뇌성벽력으로도 얘기하고, 제우스 신화에서는 번개로도 얘기했다. 사람으로는 진괘를 장남, 손괘를 장녀로 비유한다.
그 다음에 이파리가 있고 꽃이 핀다. 줄기에서 뻗어 나온 꽃과 열매가 음양 짝이 된다. ‘꽃’은 ‘태(兌)괘’, 꽃이 피고 나면 맺는 ‘열매’가 ‘간(艮)괘’다.
간은 열매다. 형상으로 말하면 자연계의 산(山)도 간이다. 간은 음 기운이 딱 멎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아래에 음효가 두 개 있고, 위에 간상련으로 양 기운이 음에 묶여 있다. 가장 정적이면서 무언가 거대한 생명의 약동이 느껴지는 것이 산이다.
그리고 태가 꽃인데, 간태가 합덕하여 간은 막내아들(小男), 태는 막내딸(小女)이다.
뿌리에서 줄기가 뻗어 올라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 나아가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생성의 전 과정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음양의 두 요소가 있다. 즉, 나무의 모든 변화를 이끄는 근원, 나무를 존재하게 하는 생명의 근본이 있다. 바로 ‘물’과 ‘불’이다.
불은 태양에서 온다. 그 태양 불이 ‘이(離)괘’다. 그 다음에 땅속에 있는 물 기운은 ‘감(坎)괘’다. 이 물과 불이 생명의 중추 작용을 한다. 사람으로는 중남(中男), 중녀(中女)다.
‘감(坎)’은 물인데, 하늘에서는 달(月)이다. 그리고 불[離]은 태양(日)이 근원이다. 감리일월(坎離日月), 상제님의 종통이 여기에 다 들어있다.
나무의 뿌리와 줄기, 꽃과 열매는 일월의 물과 불 기운을 받아 생성된다. 물과 불을 받아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이렇게 해서 여섯 괘다.
이 여섯 괘를 사람으로 말하면 한 아버지 어머니 밑에 있는 3남 3녀다. 이 모든 생명은 하늘과 땅에서 태어나 하늘과 땅의 변화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지를 뜻하는 ‘건곤(乾坤)괘’가 있다. 뿌리와 줄기 ‘진손’, 꽃과 열매 ‘간태’, 그리고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물과 불 ‘감리’, 천체로 말하면 일월, 이 여섯은 건곤 천지부모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전부 팔괘다.
이처럼 나무 한그루에서 팔괘의 이치를 쉽게 배울 수 있다.
- 간도수란?
간은 열매다. 간은 초목의 열매요, 인간의 열매요, 문명의 열매이며 역사의 열매다. 방위로 말할 때는, 문왕팔괘에서 동북방이 간방이라고 했다. 동북방에서 변화가 끝나고 새로 시작된다. 다시 말해서 동북방에서 열매를 맺는다. 동북방에서 변화의 한 주기가 끝난다. 그래서 동북방을 간방이라고 한다.
우주 1년 변화의 한 주기에서 선천 봄여름의 생장, 즉 인간을 낳아서 기른 변화의 과정이 끝나고 가을철 성숙으로 들어가는, 여름철에서 가을로 들어가는 가을 우주개벽, 가을철 인간 문명개벽의 변화가 이 지구촌 동북방 간방에서 시작된다. 간방에서 선천 변화가 끝나고 가을의 후천변화가 시작이 된다.
인류문명도 뿌리문화에서 줄기문화를 거쳐 열매문화로 완성된다. 인간도 문명도 가을철에 열매를 거두지 못하면 헛일이다. 간도수란 바로 ‘인간과 자연과 문명의 추수정신’을 상징한다. 이걸 느껴야 한다. 열매는 ‘씨종자’다. 열매 속에 뿌리, 줄기, 이파리, 꽃 등 변화의 모든 과정이 다 들어있다. 열매에는 종과 시가 함께 존재[終於艮 始於艮]한다.
그런데 이 말은 그런 변화의 생명, 변화의 정신을 가지고 사는 간방의 한민족, 그 한민족의 삶의 과정이 곧 자연의 봄철과 여름철 과정을 다 거쳐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간방의 한민족은 인류의 시원문화, 즉 봄여름철의 성장과정을 다 거쳐 온 것이다. 이걸 알아야 이 간방에서 인류의 봄여름 선천 역사가 어떻게 끝나는지, 끝나고서 어떻게 새로 시작되는지[終始]를 안다. 인류역사의 종시,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 이것이 바로 간도수다.
‘한 시대(선천)의 끝매듭과 우주의 새로운 시대(후천)의 시작’이 간방에서 이루어진다! 간방은 바로 ‘지구의 동북방’,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이다. ‘한반도는 지구의 핵, 중심 자리’이다.
동방 조선 땅에서 지금까지의 인류역사가 종결되고 가을철의 새 역사가 출발한다. 선천 성자들의 모든 꿈과 소망이 한반도에서 성취된다. 이것이 바로 ‘간도수’의 결론이다. 왜 천지의 주인이신 상제님께서 이 땅에 강세하셨는가? 이에 대한 우주원리적 해답이 바로 간도수에 있다. 하나님이 오신다, 미륵님이 오신다, 옥황상제님이 오신다, 그게 전부 간방소식이다.
‘종만물시만물자(終萬物始萬物者)는 막성호간(莫盛乎艮)이라, 간은 만물의 변화를 끝매듭 짓고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는 곳으로, 간방보다 더 번성한 것이 없다’고 했다. 이 간보다 더 번성한 게 없다. 간보다 그 변화가 더 강력한 것이 없다. 간방보다 변화의 모습들이 더 강렬하고 구체적인 데가 없다. 간방 한반도는 분단이 된 채 이념의 극한 대결이 아직도 안 끝났다.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최후의 분단국이다.
성언호간(成言乎艮),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천지 역사의 목적이 동북 간방에서 완성된다, 하나님의 소원이 간방에서 성취된다. 이러한 간소식에 대해, 간도수의 결론에 대해 우리는 뜨겁게 알아야 된다.
그럼에도 오늘의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 한민족은 역사의 진실이 왜곡 날조되어 혼을 완전히 상실했다. 동방 역사의 진실을 바로잡는 길이 무엇인가? 내가 한국인이 되는, 진정한 한국인이 되는 도가 어디 있는가?
가을천지의 정의로써 이 모든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시원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민족혼을 되찾아야 한다.
뿌리 뽑힌 한민족혼
자, 이제 2장 ‘뿌리 뽑힌 한민족혼’을 보자. 여기서부터 중요한 것은 우리 한민족사의 국통맥이다.
한반도는 ‘지구의 혈 자리’로서 지구촌 해양문화와 대륙문화가 하나로 수렴 통합되는 중심지이며, 선천의 인류문명사가 총체적으로 종결되고 후천 새 역사가 시작되는 개벽의 중심 땅이다.
그런데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동북아에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선천의 마지막 역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일본과 중국은 동서고금을 통해 지구촌의 어떤 나라도 저지른 적이 없는, 남의 역사를 통째로 강탈하여 제멋대로 왜곡하고 먹어치우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한민족은 환국-배달-조선의 삼성조시대가 지난 후 열국시대 이래 중국 한족(漢族)과 일본에 의한 상고(上古) 역사의 왜곡으로 민족사의 뿌리가 단절되어 그 상처가 심히 깊더니…. (道典 1:1:7)
우리의 상고사는 중국과 일본에 의해 너무도 오랫동안 왜곡과 말살의 질곡에 갇힌 채 신음해 왔다. 역사의 맥이 단절되어 천애의 고아 아닌 고아가 된 동방의 한민족! 선천 상극의 인류사에서 강대국들이 저질러 온 온갖 불의가 ‘동북아의 고대사’에 압축되어 있다.
후천개벽을 목전에 두고 동북아 삼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총성 없는 역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망언! 벼랑 끝에 서 있는 한민족의 미래! 동북아의 시원역사, 그 진실을 바로잡지 못한 채 오늘날 한민족은 혼 빠진 역사의 주인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 세계사 속에서 사라진 한국 고대사
실제로 서양 여러 나라의 역사 교과서에는 고대 한민족의 실체가 단 한 줄도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한반도의 북부는 한사군을 통해 중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는, 터무니없는 역사가 마치 진실인 양 그대로 유포되고 있다.
캐나다의 밴쿠버에 있는 브리티쉬 콜럼비아 대학의 한국학과 학장 베이커는 ‘고조선과 단군은 뚜렷한 증거가 없으므로 신화라고 단정지을 수밖에 없는, 믿을 수 없는 역사(unreliable history)다’라고 말하고 있다.
‘역사는 문서를 바탕으로 한다. 중국 서적에서 고조선을 언급하지만 고조선이 한국역사였다는 고고학적인 믿을 만한 문서 증거가 없다. 한사군 이후부터 기록에 있으므로 한국역사는 이로부터 시작한다. 진정한 한국사는 고려부터이다. 그 이전은 하나의 통합된 나라가 아니었고 단지 고구려인, 신라인, 백제인들이 있었을 뿐이다.’
이것이 북미에서 가르치고 있는 ‘한국 고대사의 실상’이다. 이미 동북공정은 캐나다인들의 의식 속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한국의 역사는 머리와 사지가 절단된 불구의 몸이 되어 환국-배달-고조선으로부터 내려 온 9천년 역사가 ‘1천년 역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영어의 코리아(korea)가 고려에서 온 것이다. 고려의 창업시조 왕건이 나라 이름을 정할 때 북방의 고구려 유민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고려라고 했다.
그리고 그 전에는 북쪽의 대조영(大祚榮)의 아버지 대중상(大仲象 : 대진국 열황제)이 세운 대진국(大震國 : CE 668~926)과 남쪽의 소위 통일신라라고 하는 후신라의 남북국 시대가 있었다.
또 그 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사국시대가 있었고, 그보다 앞서서는 열국시대가 있었다. 즉 북부여를 중심으로 백제의 전신인 마한, 가야 땅의 번한, 신라의 전신인 진한, 평양 쪽의 최숭(崔崇)이 세운 낙랑국(樂浪國 : BCE 195~CE 37), 동부여, 동옥저, 동예 등의 여러 나라 시대가 있었다.
낙랑국은 본래 요하지역에 있던 나라였다. 그런데 서기전 195년 12월, 연나라의 인구 증가로 인해 압박이 가해오자 최숭이 백성들을 이끌고 대동강 유역(지금의 평양)으로 이주하여 낙랑국을 세웠다. 흔히 알고 있는 중국의 한 무제가 설치했다고 하는 한사군의 낙랑군과 최숭의 낙랑국은 전혀 다르다.
- 옛 조선은 과연 한나라에게 망했나?
전국을 통일한 진(秦 : BCE 221 전국통일 ~ BCE 207 멸망)나라가 15년 만에 망하고 난 후, 한 고조 유방(劉邦)과 초패왕 항우(項羽)가 6년 동안 아주 피가 터지도록 싸운다. 결국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한(漢 : 전한 BCE 206~CE 8)제국을 열게 되는데, 그 7대 임금이 무제(武帝 : BCE 141~ BCE 87)다.
오늘의 사가들은 북쪽의 흉노를 굴복시킨 한 무제가 자신감을 얻어 동북방의 고조선을 쳐들어왔다, 그리하여 준왕(準王)을 몰아내고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그 자리에 식민지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한다. 마치 준왕이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무엇인가?
준왕은 고조선의 서쪽 날개였던 번조선(番朝鮮)의 부단군이었을 뿐이다. 또한 진조선(辰朝鮮)의 마지막 제왕인 고열가(古列加) 단군이 장수들의 거듭된 화란 속에 퇴위하여 고조선 본조시대가 마감(BCE 238년)된 것은, 찬적 위만(衛滿)이 번조선을 점거하여 스스로 왕위에 오르기(BCE 194년) 44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특히 고열가 단군 시절 중국은 춘추전국시대(춘추시대 BCE 722~ BCE 403, 전국시대 BCE 403~ BCE 221)의 혼란기에 처해 있었다. 사실이 그러할진대 당시 한족이 고조선을 위협한다거나 고조선을 찬탈할 여력이 어디 있었겠는가!
- 위만조선의 진실
그러면 식민주의 사관에 물든 역사학계에서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는 위만조선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위만(재위 BCE 194~BCE 180?)은 본래 중국 한족 출신으로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죽마고우였던 노관의 부하이다. 중원을 평정한 한 고조는 여태후와 더불어 개국공신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다. 이 때 연나라 왕 노관은 흉노로 달아나고, 위만은 조선인으로 변장한 뒤 부하 1천 명과 함께 왕검성에 와서 번조선의 준왕에게 거짓 투항을 했다. 이에 준왕은 덕으로써 그를 받아주고 서쪽 변경을 지키는 수비대 책임자로 임명까지 했다.
그러나 그 곳에서 한족 망명 집단을 이끌고 몰래 세력을 기른 위만은 이듬해 준왕을 배반하고 왕검성을 쳤다. 그리고 나라 이름은 그대로 둔 채 스스로 왕이 되었다(BCE 194). 『삼국유사』에서 말한 위만조선은 바로 우리 민족의 서쪽 영토였던 번조선의 한 모퉁이를 잠깐 강탈하여 지배했던 위만정권에 불과하다.
그런데 현 역사학계에서는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준왕을 잡아먹은 위만 같은 배은망덕한 자가 고조선의 정통을 계승하였다는 것이다.
『사기』에도 분명히 위만을 연나라 사람[燕人]이라고 기록했을 뿐 아니라, 안정복의 『동사강목』에서는 ‘위만은 나라를 찬탈한 도적’이라 했고,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용은 ‘위만은 한 명의 강도에 불과하다[乃一强盜]’고 하였다. 이처럼 위만은 중국 한족의 인물로서, 한마디로 은혜를 원수로 갚은 배은망덕한 떠돌이 도적인 것이다.
위만정권은 손자 우거왕 때에 이르러 밖으로는 한 무제의 침입과 안으로는 지도층의 분열로 인해 결국 망하게 된다(BCE 194~BCE 108).
- 조선 역사를 부활시킨 동명성왕, 고두막한
한 무제는 그 여세를 몰아 고조선의 뒤를 이은 북부여로 쳐들어온다. 그런데 당시 북부여의 4대 고우루(高于婁) 단군은 워낙 심성이 유약하여 제대로 맞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중에 병사하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 조선 민족이 다 넘어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는데, 이를 지켜보고 있던 고조선 47대 고열가 단군의 후손 고두막한(高豆莫汗)이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한 무제의 군대를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다.
고두막한은 기원전 108년, 졸본(卒本)에서 나라 이름을 ‘북부여’에서 동방의 대광명이라는 뜻의 ‘동명(東明 : 동명부여, 또는 졸본부여)’이라 바꾸고 동명왕으로 즉위한다. 그리고 기원전 87년에는 북부여를 계승하여 조선 역사 부활의 푯대를 다시 세우니, 이분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동명성왕(東明聖王)이다.
이 때 본래 북부여 4대 단군의 승계자인 해부루(解夫婁)가 동쪽으로 가서 가섭원(迦葉原) 땅에다 나라를 세우는데, 동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으로 동부여(東夫餘)라 했다. 해부루는 북부여 4대 단군의 동생이다.
그리하여 고두막한이 북부여의 5대 고두막 단군이 되는데, 그때부터 북부여의 후기시대[後北夫餘]라고 한다. 북부여는 시조 해모수(解慕漱) 단군으로부터 6대 만인 고무서(高無胥) 단군 때에 막을 내린다.
6대 고무서 단군은 딸만 셋이었다. 그 둘째딸이 소서노(召西弩)인데, 고주몽과 혼인을 시켜 사위로 삼아 주몽으로 하여금 북부여를 계승토록 한다. 그리하여 고주몽이 북부여의 7대 단군이 되었으며, 그 후 기원전 37년에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로 변경하여 고구려 700년 역사의 창업 시조가 된 것이다.
이것이 고조선이 멸망한 후 열국시대로 들어서는 과정이다.
- 왜 중국인들은 부여사를 말살했을까?
북부여가 단군조선을 계승하였다. 이것이 한민족 고대사의 국통맥을 바로잡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역사에서는 북부여 역사라는 게 완전 말살됐다.
그 역사의 원형이 『환단고기』 「삼성기」상, 하 두 편과 「단군세기」에 나온다. 「단군세기」에는 47대 단군 역사가 나오고 「북부여기」상, 하에는 북부여의 역사가 나온다.
「북부여기」상에 해모수 단군서부터 역대 단군들이 나오는데, 5대 단군 고두막한이 바로 동명성왕이다. 고두막한은 중국 한족의 침략을 받아 완전히 멸망할 위기에 놓인 우리 동방 조선의 역사를 부활시킨 인물이다.
그런데 중국 한 무제가 고두막한을 죽이려고 덤벼들었다가 참패를 당했다. 한 무제가 패퇴한 대사건, 이것은 중국 역사상 최대의 수치였다. 중국 5천년 역사에서 당태종이 안시성에 와서 양만춘 장군한테 화살을 맞아 눈 빠진 것보다 더 부끄러운 사건이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가들과 국내 사대주의자들이 이 북부여 역사를 완전히 뿌리 뽑아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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