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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총리,저우언라이 1946년1월, 저우언라이(주은래)중국 공산당 중앙위원은 옌안에서 군용기를타고 충칭으로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기장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날개에 결빙이 생겨 위급한 상황입니다.모두 낙하산을 매십시오." 잠시 뒤 한 어린 소녀가 울음을 터뜨렀다. 그 아이의 좌석에 낙하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우언라이는 주저 없이 지신의 낙하산을 벗어 소녀에게 건넸다. 댜행히 군용기가 추락하는 위험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아 저우언라이도, 다른 사람도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그의 모든 겸허한 행동을 겉으로 흉내 낼 수 있겠지만 그때의 일이 아무도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칭송했다. 중국인들에게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이 사랑한 총리'로 기억되고 있는 저우언라이.그는 파리 유학을 다녀온 인텔리 혁명가였지만,일찍이 농촌 출신인 마오찌둥(모택동)의 지도력을 간파하고 2인자로 자청했다. 세련된 말,속옷까지 꿰매 입는 청빈한 삶, 비판보다 격려가 몸에 밴 그의 모습은 전제왕조 시절의 덕망 높은 재상을 연상케 한다. 냉전이 한창 극에 달했던 시절, 유명한 문인인 푸레이(부뢰)의 아들이 폴란드로 유학을 떠났다가 서방으로 망명했을 때 일이다. 중국정부는 푸레이와 아들의 편지 왕래를 금지시켰다.푸레이는 편지 만이라도 허가해 달라고 수없이 당국에 호소했지만 중국 정부는 강경했다. 이때 푸레이의 소원을 들어준 저우언라이 총리였다. 그는 "어떤 이념도 부자간 정마저 끊어놓을 수 없다"며 편지 왕래를 허락했다. 이처럼 인간적이고 따뜻한 성품을 지녔기에 저우언라이는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인민의 총리' 로 존경받고 있다. (좋은생각 5월호에서 2006.5.25일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