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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선우휘를 생각한다 ^^

황금인간 2006. 6. 7. 07:08
 
 

[오피니언] 선우휘를 생각한다
[조선일보 2006-06-04 22:52]    

[조선일보]

선우휘(鮮于煇·1922~1986)란 사람이 있었다. 당대의 논객이자 소설가, 무엇보다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휴머니스트였다. 그는 1970년대 김대중 납치사건 때 수난을 각오하고 정부를 질타했고, 금기 영역이던 통일논의로 옥고를 치렀으며, 언론윤리법 파동 때 정부 비판에 앞장섰다.

이런 그를 한편에서는 보수반동 박 정권 옹호자로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70년대 일본의 진보적 월간지 ‘세카이(世界)’에 한국정부를 규탄하는 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연재한 필자 ‘TK생’은 일본에 망명한 지명관이며, 이를 쓰도록 주선한 사람은 선우휘라는 사실이 최근에야 밝혀졌다. 선우휘는 만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에 대한 비판은, 불편부당한 중용의 길을 걸어온 데 주어진 다양한 박수갈채로 생각하고 싶다. 이제 그 모든 것이 그리운 추억이다. 시(是)든 비(非)든 그러한 반응은 인간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바람직한 정동(情動)의 표현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선우휘는 두 대통령이 간곡하게 권하는 정부 최고위직과 신문사 회장직을 바쇼의 하이쿠를 읊어 에둘러 사양했다. “들에 핀 풀꽃이 어여쁘다 하여 집안에 옮겨 심어도 아름다울까.”

이를 전해 들은 이병철 삼성 회장이 선우휘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우 선생, 회장이나 총리는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주필이야말로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소.”

김지하가 인혁당 사건으로, 임헌영이 남민전 사건으로 중형을 받게 되자 선우휘는 ‘이들이 자신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 아닌 것’이라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쓰고 담당 판·검사를 만나 변호하고, 석방을 재촉하는 칼럼까지 썼다.

임헌영이 석방되자 나는 그와 함께 동부이촌동 선우휘 댁을 찾았다. 그날 선우휘는 우리들에게, 사회주의 좌파들의 광란이 스탈린 시대를 예고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읽어보기를 권했다. 이 책을 읽고도 좌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구제불능이라는 것이다.

1986년 푸른 6월 선우휘는 세상을 떠났다. 그날 일본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의 조전(弔電)을 읽고 나는 한동안 깊은 상념에 젖었다. “하늘은 어째서 이렇게 가혹한 일을 하실까요. 선우휘 선생은 사람의 거울과 같은 분이었습니다. 강한 의지와 상냥한 마음씨, 풍부한 지식, 잔잔한 애국심, 그리고 멋진 문학적 재능…. 내일부터는 이 세상에 선우휘 선생이 안 계시겠구나 생각하니 섭섭하고 외로운 마음으로 못 견딜 지경입니다.”

그가 떠난 지 20주기를 맞아, 12일 ‘선우휘를 기리는 밤’이 열린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이론적 지성보다 정념적 감각 프로파간다 시대에 떠밀려가는 게 아닌가? 선우휘는 오늘의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세상이 더 어지러워졌다고? 괜찮아, 대한민국! 외치는 붉은 악마들의 눈빛을 봐. 겨레의 기운이 줄기차게 일어서고 있음을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광풍이란 언제나 잠시 휘몰아치다 사라져갈 뿐이야!”

선우휘의 호방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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